“먼 미래에나 가능한 꿈”이라고 했다.“가능하다 해도 우리나라가 앞장설 영역이 아니다”고도 했다.
“한정된 연구개발 예산을 왜 되지도 않을 곳에 쏟아붓느냐”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과학 선진국들이“한국이 꼭 함께 해줘야 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로를 건설하는 대형 국제 프로젝트에 우리나라가 참여하게 된 과정은 이토록 극적이었다.
중간 진입에 성공
13일 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설 핵융합연구센터 설립을 승인함으로써 국제핵융합실험로(ITERㆍ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프로젝트 참가가 공식화했다.
우리나라는 2003년 ITER 참여가 이미 결정된 상태였지만, 40~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선진국들이 핵융합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핵융합연구사업단(단장 이경수)만 두고 있었다.
연구를 시작한지도 고작 10여년에 불과하다. 1988년부터 추진돼 올 6월 프랑스 카다라시로 최종 부지를 확정짓고 내년에 착공되는 ITER는 건설에만 10년, 전체 비용만 50억 달러(약 5조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우리나라에게 ITER는‘먼 나라의 꿈 같은 이야기’였다.
한국의 갑작스런 ITER 참여는 1995년 연구를 시작한‘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ㆍ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anced Research)가 ITER의‘시제품’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부터다.
K-STAR는 2007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정률 86%를 나타내고 있다. K-STAR는 특히 세계 최초로 나이오븀과 주석의 합금이라는 새로운 소재의 초전도 전자석을 만들어 성능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재료와 공정으로 만들어진 초전도 전자석은 ITER에 그대로 적용될 예정이다. 사업단 장치운영부장인 권 면 박사는 “초전도 선재(재료)가 조금이라도 균질하지 않으면 영하 270도에서 3만암페어의 엄청난 전류가 흘렀을 때 일부 저항을 일으켜 초전도가 유지되지 않는다”며 “선진국들이 이론으로만 점치던 것을 우리가 실증해 보여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한국을 방문한 ITER측은 사업단의 실험시설과 K-STAR 제작에 참여하는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고려제강 원신코퍼레이션 포스콘 등을 둘러본 후 ‘한국 참여’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사업비의 10%인 5억 달러(약 5,000억원)를 부담하게 되는데, 이중 75%는 이들 업체들이 현물로 공급한다. 수십년간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우리나라가 ITER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핵융합장치 모델을 만들어 프로젝트 진행 도중에 진입하는 전략을 극적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꿈의 에너지원, 핵융합
핵융합 발전은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에너지원보다 효율이 높을 수 있다.
핵융합이란, 중수소나 삼중수소가 서로 결합해 헬륨 같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면서 미소한 질량의 손실이 에너지로 분출되는 현상이다. 태양과 같은 별이 빛과 열을 내는 것이 바로 핵융합 현상인데, 흔히 핵융합로를 인공태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핵이 분열되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핵융합 에너지는 핵분열 에너지의 300배나 크고 방사선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다.
트럭 한대 분량의 중수소만 있으면 유조선 11척 분량의 석유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붓는 이유가 바로 화석연료 고갈 이후 핵융합 에너지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전하를 띠는 핵끼리 결합시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핵을 결합시키기 위해 4억도 정도의 열로 가열해 플라즈마(전자와 핵이 분리된 이온상태)를 만들고, 플라즈마가 흩어지지 않도록 자기장 안에 가두는 방법을 고안했다.
토카막(도너츠 형태), 헬리칼(뫼비우스 띠의 3차원 구조) 등 다양한 자기장 구조는 아직 연구중이고,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된 구리선 전자석은 실패로 결론나 초전도로 선회했다. 초전도 재료로는 나이오븀-주석 합금이 최적이라는 것을 한국 연구팀이 실증했다.
‘한국의 태양’ K-STAR를 총괄하고 있는 이경수 핵융합사업단장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가 나육?할 수는 없지만 핵융합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과학계에서는 2035년경 실험로가 아닌 핵융합로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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