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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反盧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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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反盧는 답이 아니다

입력
200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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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가을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선 슬로건은 ‘부패정권 심판’이었다. 이것은 그 해 6월 지방선거의 슬로건이기도 했다. 심판론으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자 재탕을 한 것이다. 표적이 김대중 대통령에서 ‘낡은 정치 청산’과 미래를 말하는 노무현, 정몽준 후보로 바뀌었는데 곧 물러갈 정권을 계속 때리겠다는 얘기였다.

이 전략은 노 후보가 반(反) 이회창 단일후보가 되자 바로 한계를 드러냈다. 이 후보는 단일화 이후 투표일까지 약 한달간 단 하루도 노 후보를 앞서 보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는 말이 있다. 언덕을 오르려면 강을 건너기 위해 타고 온 뗏목을 버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강(지방선거)을 건넌 한나라당은 다시 뗏목(정권 공격)을 타고 언덕(대선)을 오르려 했다.

차기 대선을 2년3개월 앞두고 있는 지금 한나라당은 ‘가장 선명한 반노(反盧) 야당’이다. 그런데 대선 패배 후나 지금이나 그게 다라는 게 문제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긍정적 메시지나 자기 쇄신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70%가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여론흐름에 몸을 싣고 편안히 떠내려왔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한나라당은 차기 대선에서도 반노만 외쳐대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밑천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때쯤이면 반노는 흘러간 옛 노래가 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대통령 지지도가 지속될 경우 여당 대선후보조차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할 텐데 대통령과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근 연정 논란의 와중에 당내에서 제기된 ‘빅 텐트 정치 연합론’이나 대통령 하야주장은 연정반대 여론에 편승해 재미를 보려는 습관적 반노 공세다.

다른 반노 세력 및 호남과 연대해 연정 음모에 맞서야 한다는 빅 텐트론은 한나라당의 능력 밖이다. 한나라당이 전체 반노 진영의 구심점이 될 흡인력을 갖고 있는가. 오히려 연대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가. 게다가 호남을 어찌해보겠다니 과대 망상에 가깝다.

대통령 하야 운운 역시 한나라당에 대한 ‘자격 시비’만 불렀다. 많은 국민이 노 대통령의 ‘권력 통째 이양’, ‘임기단축’ 발언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헌정 혼란 등을 걱정해 대통령의 퇴임은 원치 않을 만큼 현명한데도 제1야당이란 데서 신경질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것은 대통령을 세게 때릴수록 인기가 오르는 특정지역 출신 의원들이 강경 분위기를 주도하는 탓이다. 이것만으로도 다음 총선의 당선을 보장 받을 수 있는데 다른 일을 벌일 이유가 그들에겐 없다.

그러나 반노 타령만으론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을 여론조사는 보여준다. 반노 여론은 70%인데 당 지지도는 20%대에 머물고 있고,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1위 자리는 한나라당 인사가 아니라 이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이 1년 가까이 지키고 있다. 여론의 안목은 반노와 같은 조건 반사로 휘어잡을 수 있을 만큼 얕고 단순하지 않다.

반노는 한나라당에게 숙명적 선택이면서 치명적 덫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그 변증법적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 버림으로써 취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 빗장은 박근혜 대표가 열어야 한다. 박 대표마저 당내 대세에, 눈에 보이는 표 계산에 안주한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 그간 당 운영과 분위기를 주도해온 중심세력의 면면을 바꾸는 데서 변화는 시작돼야 한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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