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환경영화제에 개막작 ‘길’을 들고 한국을 찾은 이란 출신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9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시종일관 피곤하고 불쾌한 모습이었다.
‘당신 영화 속 길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내 영화를 봤다면 알 수 있다”고 짧게 답했고, 북한과 이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답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소 장황한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의 허리를 뚝 자른 채 “지금 무려 세 개의 질문이 중복되어 있다.
도대체 물어보고 싶은 게 어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기자회견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마지막 질문이라면서 계속 질문 하는 건 이란이나 한국이나 같다”고 말해 앉아있는 기자들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무엇이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이리 불쾌하게 만들었는지는 그 스스로 밝혔다. 영화제 참석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한 가지 지적하자면 영화 상영장 주위가 너무 소란스럽고 상영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지적은 또 이어졌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상태였는데 행사가 조금 길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개막식이 길었다고 생각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다름 아닌 개막식 진행의 문제였다.
어수선한 행사장 정리로 개막식 시작이 지연된 데다, 상영에 앞서 영화제에 참석한 정치인 정부관료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주요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과정 즉, 내빈 소개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시간을 차지했던 것이었다. 한국인의 지나친 인사성은 수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참석해 온 이 거장 감독에게도 매우 생소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졌고 결국 심기를 건드렸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생각해 보면 이 내빈소개가 영화제에서 문제가 됐던 적이 또 있다. 지난해 말 부천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을 해촉해 문제가 불거졌던 당시, 조직위 관계자는 “해촉된 것은 김 전 위원장이 지난 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보면서 부천시장의 소개를 빠뜨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제영화제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고 있는 이 ‘내빈 소개’.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빠뜨렸다 해서 집행위원장 자리를 내 놓아야 하고, 어렵게 초청해 온 세계적 거장 감독을 언짢게 만드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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