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한 나무아미타불 염송이 산사에 가득 울려 퍼진다. 높다랗게 쌓인 장작 연화대 위에 법구가 안치돼 있다.
거화편(炬火篇)이 낭송된다. ‘이 불은 삼독의 불이 아니라 여래일등삼매(如來一燈三昧)의 불이니…, 이 빛을 보고 자성의 광명을 돌이켜 무생을 깨달으라.” 이윽고 “스님, 불 들어갑니다” 라는 아룀과 함께 불길이 치솟으면, 염송은 더욱 커지고 한쪽에서는 “스님…” 하는 신도들의 안타까운 흐느낌이 이어진다. 불이 다 타고 연기마저 사라지면 사리가 수습되기도 한다. 무(無)의 사상이 집약된 불가의 다비식 풍경이다.
▦ 조계종은 매장을 금지하고 있지만, 반드시 다비식을 하라고 규정하지도 않는다. 11일 입적한 법장 총무원장으로 인해, 불가의 다비식이 줄어들 전망이다. 그는 장기기증운동 단체인 생명나눔 실천본부를 세웠고,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법구가 장기 기증용으로 병원에 기증되었다.
총무원장의 시신이 병원에 기증되어 다비식 대신 영결식으로 치러지는 것은 처음이다. 수덕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비식도 취소됐다. 워낙 갑자기 입적하는 바람에 1994년 작성한 장기기증 등록서가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 법장 스님의 시신은 입적 후 시간이 꽤 경과했기 때문에 장기 기증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나, 뼈는 이식이 가능해 골 은행에 보관되었다. 그는 평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니 다른 이를 위해 쓰인다면 좋은 일이고, 불교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시신 기증을 장려해 왔다.
조계종은 조계사 빈소 옆에서 사후 장기기증서약을 받고 있다. 법안ㆍ탁연ㆍ정범 스님 등 교역직 승려들이 13일 잇달아 기증을 서약함으로써 새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법장 스님의 관습혁파는 파격이 아니라,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 19세에 수덕사로 출가한 그는 부모를 잃고 출가한 동자승 30여 명을 맡아 일생을 뒷바라지했다. 직접 호적을 만들어 주고 때론 아버지가, 때론 스승이 되어 함께 살았다.
또한 소년소녀 가장들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육신의 최후까지 고통 받는 이들에게 공양한 일생은 그의 인자한 미소만큼이나 아름답다. 이른 가을에 고요히 지는 나뭇잎이 되어 사후까지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한 그는 현대의 성자로서 부족함이 없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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