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요? 막상 내놓으려니 서운했어요. 나이 들고 나선 ‘굴렁쇠 소년’이란 말이 싫어서 꺼내보지도 않았거든요.”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녹색 그라운드에서 굴렁쇠를 굴려 감동을 선사했던 윤태웅(25ㆍ경기대 체육학과4 휴학)씨가 15일 올림픽기념관 광장에서 열리는 서울올림픽 17주년 기념식 때 소중하게 간직해 온 굴렁쇠를 기증한다.
윤씨는 13일 “어머니가 비닐에 싸 소중하게 보관해 왔는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윤씨가 굴렁쇠 소년으로 낙점된 이유는 독일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던 날인 1981년 9월 30일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기는 7년 뒤 서울 잠원초등학교 1학년 때 잠실 경기장에 선다.
당시의 경험은 자라는 동안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때 ‘대한민국의 마스코트’였으니 항상 바르고 착하게 커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술, 담배는 물론 머리염색도 해 본 적이 없다.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이지만 ‘꽃미남’ 소리를 듣는 외모 덕분에 미니 홈페이지 방문자수가 하루 200명을 넘는다. 300여 명의 인터넷 팬클럽 회원도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유명세를 타면서 광고 모델 제의도 쏟아졌지만 부모는 “평범한 아이로 키우겠다”며 모두 거절했다. 경기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뒤 2001년“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강한 남자가 되겠다”며 해병대에 입대, 올 2월 제대했다.
굴렁쇠 아이디어를 내고 개막식을 주도한 이어령(71) 전 문화부 장관과의 인연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가끔 안부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낸다.
지난해 제대 직전에 만났을 때 이씨는 “어린 놈이 굴렁쇠 굴리는 것 가지고 고집을 피우더라.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네 말이 맞더라”라며 옛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고 한다.
윤씨의 어린 시절 꿈은 실업(조흥은행) 축구 선수로 활약한 아버지(윤명렬ㆍ53)의 뒤를 잇는 것이었다. 지금은 진로를 구상 중이다. 체육 교사나 관련 분야 전문가가 꿈이다. 태권도 공인 4단, 라켓볼, 스쿼시, 수상보드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 맨이다.
“얼마 전 어떤 방송국이 실시한 광복 60주년 기억에 남는 명장면 설문조사에서 ‘굴렁쇠 장면’이 상위에 올랐더군요. 벌써 17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스물 다섯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난 ‘굴렁쇠 소년’이 그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 국민들께 한마디 아뢰었다.
“이제 굴렁쇠 꼬마가 아닌, 듬직하고 멋진 대한민국 청년으로 지켜봐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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