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자민당) 총재는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해온 개혁을 더욱 진전시킬 정열을 가진 분이 됐으면 합니다.”
대통령형, 아니 제왕형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후계자의 기준을 밝혔다. 극적인 승부수로 총선에서 자민당에 역사적 승리를 안겨준 것처럼 ‘포스트 고이즈미’의 선정도 ‘극장형’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할 것 같다. 일본에선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지난해 4ㆍ15 총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후계자 관리법과 똑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이즈미 총리는 12일 기자회견에서 “내 주위에는 다양한 분들이 자민당 총재와 총리직에 의욕을 갖고 있다”며 “우정개혁법안 성립 이후 새로 구성할 내각에 이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임기 연장설은 전면 부인했다. 총선에서 승리하자 마자 후계자의 조건과 경쟁방식을 제시한 셈이다. 한마디로 차기주자는 각각 각료를 맡아 누가 내 노선을 잘 답습할 것인지 겨루어 보라는 것이다.
현재 자민당의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로는 아베 신조(安倍普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아소 타로(麻生太郞) 총무성 장관 등 4명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성 장관 등은 이번 선거에서 반대파로 분류돼 탈락한 상태이다.
이들은 우선 다음 개각에서 원하는 포스트를 맡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입각 후에도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점수를 따기 위해 각축을 벌여야 한다. 이는 지난해 탄핵 총선에서 과반수를 점한 뒤 정동영 통일ㆍ 김근태 보건복지 장관을 입각시킨 노 대통령의 조치와 닮은 꼴이다. 당내 개혁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하는 것은 물론, 레임덕을 막고 퇴임 후 영향력을 노리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고이즈미 총리은 최근 이들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지난달 한 TV 프로그램에서 다니카키 장관은 “성실하고 철저하다”, 아소 장관은 “경험이 풍부하다”고 각각 말했다.
아베 간사장대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다”고, 후쿠다 전장관은 “균형감각이 풍부하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일부 지원단체의 의견만을 듣는 후보는 (총재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후보군의 우위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그 동안 당 내외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왔다. 그러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력히 주장하는 등의 돌출적인 언행 때문에 당 원로 및 중진의 평가는 좋지 않다.
반대로 균형감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후쿠다 전 장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아, 자민당 내에서는 암묵적으로 후쿠다 대망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이즈미 총리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 때문에 매번 후보에 오르면서도 주변부로 맴돌았던 다니가키와 아소 장관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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