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표’ 대북사업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7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통해 백두산과 개성관광을 성사시켜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잡는 듯 했으나 김윤규 부회장의 대표 이사직 박탈로 촉발된 북한과의 갈등이 전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꼬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사업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이번 일로 경영능력 시비까지 불거지자 급기야 현 회장이 심경을 밝히고 북한의 이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현 회장은 12일 그룹 홈페이지(www.hyundaigroup.com)에 띄운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을 통해 “16년간 정주영 회장님과 정몽헌 회장님의 대북사업을 보필했던 사람을 생 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물러나게 했던 것은 대북사업의 미래를 위한 읍참마속의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단은 일일이 언급하기도 싫은 올바르지 못한 비리 내용들이 개인의 부정함을 떠나 기업 전체의 정직함에 치명적 결함이 되지 않도록 하는 중대한 결단이었다”고 역설했다.
현 회장은 또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하는 기업 경영인은 자신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기업과 사회에 독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고 김 부회장을 겨냥한 뒤 “비리를 저지른 경영인의 내부 인사조치가 대북사업 수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북사업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기로에 선 듯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만에 하나 국민 여러분께서 비리 경영인의 인사조치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저는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선택하겠다”고 강조했다. 현 회장은 “온 국민이 염원한 통일 사업으로 국민이 주인인 대북사업은 그 열매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그 중심에 현대아산이 있고자 하며 북한 당국도 현대아산의 정직한 열정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외부에 노출되기를 싫어하는 현 회장이 이처럼 심경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선 것은 대북사업을 둘러싼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북측이 지난달 27일 김 부회장 문제에 항의, 이 달부터 관광객 수를 하루 600명으로 줄이면서 당일 및 1박2일 관광 예약자 1만6,000여명의 예약이 취소돼 32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또 7일 개성시범관광이 끝났지만 북한측이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서지 않아 본 관광이 언제 시작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백두산 관광도 아무런 진척이 없어 이대로 가다간 올 첫 흑자를 기대했던 대북사업이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도 북측은 현 회장을 홀대하며 “김 부회장을 복귀시키지 않을 경우 전체 대북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실마리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김 부회장은 대표 이사직을 박탈당한 뒤 중국을 오가며 현대측에 서운함을 표시하고 있다. 현대측은 미국에 체류 중인 김 부회장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결국 김 부회장에 대한 인사조치는 불가피한 것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경영이 미숙하다는 항간의 지적을 잠재우고, 북측에겐 대북사업이 통일사업 임을 강조해 협상에 임해 달라고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을 들고 나선 셈이다. 이젠 북측과 김 부회장측이 어떤 화답을 할지가 관심 대상이 됐다.
황양준 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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