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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오페라 '니벨룽 반지' 한국초연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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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오페라 '니벨룽 반지' 한국초연에 부쳐

입력
2005.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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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가 다음 주말 드디어 한국 초연에 들어간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프로덕션으로 24, 25, 27, 29일 나흘간 하루 한 편씩 선보이는 이 공연은 진작부터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을 예습하기 위한 감상회가 이어지는가 하면 ‘미리 보는 니벨룽의 반지’ (호미 발행) 등 해설서도 나왔다. ‘반지’ 특강은 진 뮤직갤러리(14, 21, 28일 오전 10시 30분. 02-3431-6686)와 무지크바움(21일 오후 8시. 02-546-1296)에서 진행된다. ‘반지’ 공연의 의의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2001년 10월,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덴마크 출신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발에서 2006년부터 오를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 연출을 맡을 것이라는 뉴스가 외신 문화면을 장식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4년 7월, 이번에는 그가 이 4부작이 자신의 예술적 역량으로는 무대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판단 끝에 연출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백전노장이 첫 오페라 연출로 꿈의 무대 바이로이트에서 그것도 ‘반지’ 4부작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고심 끝에 연출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니….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거장 감독이 연출을 포기할 정도인가.

바그너의 오페라 ‘반지’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반지를 둘러싸고 신과 인간, 거인족과 난장이족이 대를 이어 벌이는 사랑과 권력, 희망과 좌절, 환희와 비극의 대드라마다.

이 작품은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어 무대 위 사건에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다. 그러니 연출자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이것은 곧 커다란 ‘표현의 부담’이다.

무대 위에서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을 온전히 ‘말이 되게’ 배치해야 하는데 무시간, 무공간이라는 벌거벗은 상태에서는 시작조차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복잡한 줄거리와 엄청난 양의 대사에 담겨있는 넘쳐나는 의미와 정보들을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음악은 또 어떤가. 보통의 오페라보다 1.5배 가량 많은 100명 이상의 오케스트라 인원이 필요한데다 연주 시간도 살인적으로 길다. 가장 짧다는 ‘라인의 황금’이 2시간 30분, ‘발퀴레’와 ‘지그프리트’가 각각 3시간 30분, 마지막 ‘신들의 황혼’은 무려 4시간 30분.

더군다나 ‘라인의 황금’은 2시간 30분을 휴식 없이 공연하고, ‘신들의 황혼’의 1막은 서막까지 합쳐 2시간이니 이쯤 되면 연주가 아니라 ‘고행’이라고 할 만하다. 때문에 이 장대한 작품을 음악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석한다는 것은 지휘자에게 일생 일대의 커다란 도전이다.

문제는 또 있다. ‘반지’를 제대로 부르는 가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반지’의 주역 가수들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일단 초인적인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그너 가수들은 무겁고 거대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뚫고 관객에게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고, 엄청난 양의 대사를 외워야 한다는 이중부담을 떠안고 무대에 선다.

그래서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최대한 객석에 전달이 되도록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가장 낮게 내리는 대표적인 오페라가 바로 이 ‘반지’이다.

‘반지’ 공연에 나서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히말라야 등정에 나선 산악인, ‘반지’ 가수를 철인 3종 경기 주자에 비유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반지’는 지휘자, 연출가, 가수, 오케스트라 연주자 등 예술가들에게만 도전인 것이 아니다. 관객도 이 4부작 오페라를 감상하려면 고3 수험생을 떠올릴 정도의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마린스키 극장 ‘반지’의 내한공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이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작품에 도전장을 낸 관객들의 용기도 대단하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충분히 준비하고 공연감상에 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 공연을 위해 가장 많은 준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생애 최대의 작품이 될 것이다. 이번에 ‘반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결국 영상물과 CD를 통해 예습하게 될 텐데, 예습은 충분히 하되 실제 공연의 음향은 영상물의 음향과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서정원/음악 칼럼니스트, 한국바그너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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