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개혁’ 총선에서 승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일관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미국 편중ㆍ아시아 경시 외교를 펼치고 있는 고이즈미 정권의 외교 행태와 외교력 자체를 불신하고 있기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를 낙관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양국은 왠만한 문제로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관계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야스쿠니신사참배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 폭발력 강한 시한 폭탄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들어 양국간에 형성된 갈등 상황은 그동안의 관계 강화를 무색케하는 것이었다.
한일간의 실질적인 최대 현안은 역시 야스쿠니 참배 문제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신념처럼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이웃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중일 관계에서 나의 야스쿠니참배가 핵심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정치가로서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전몰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총리에 취임하면 어떠한 비판이 있더라도 8월 15일 반드시 참배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A급 전범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 참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60년대 말 세력 결집을 통해 야스쿠니신사의 국가관리화를 꾀했다. 이 계획이 실패하자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참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강한 압력 때문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씨는 1985년 8월15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참배를 강행했다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즉각 중지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역사적 과정과 배경을 언급하지 않고 개인적 신념에 따른 참배라고 강변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대중영합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이 같은 행태는 결과적으로 국가지도자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외교를 포기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심각한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변화하는 지역정세를 무시하고 대미 외교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일본 외교담당자들의 능력 부족도 한일관계 개선에 장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외교팀은 유엔 안전보장위원화 상임이사국 진출이 염원이라고 호소하면서도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실책을 범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한 극우단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교과서를 옹호하는 외무성 장관을 임명하는 등 외교라인 인선 자체도 수준 이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중국 한국 등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강화 등을 외교ㆍ안보 분야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 양국 정부간에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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