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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개성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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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개성 가는 길

입력
2005.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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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의 개성 시범관광이 끝났다. 8월 26일, 9월 2일과 7일 1,500여 명이 개성에 다녀오는 동안 평가는 대체로 좋았다. 요금이 금강산 관광요금(당일관광 11만~13만원) 정도로 정해지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전망되고 있다.

나는 지난 2일 2차 시범관광에 참가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좋은 인상을 받았다. 백두산이나 금강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유서 깊은 문화 유적들이 남아 있고, 나름대로 정답고 아름다워서 하루나 1박2일 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개성으로 가는 버스는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일행의 30% 정도가 개성 출신 등 월남한 분들이었는데 그들 중엔 5시도 되기 전에 출발지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60여 년 만에 고향 가는 길이 설레어 일찍 집을 나서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남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를 달리고 다시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나는 1992년 남북 총리회담 대표단과 함께 개성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까지 간 적이 있다. 13년 만에 다시 보는 개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13년 전에 시계가 멈춰 선 것처럼 똑 같은 풍경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변한 것은 현수막에 쓴 이름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바뀐 것뿐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장군님 만세/ 조국에 심장을 바치자/ 조국을 위하여 배우자…쥐죽은 듯 조용한 도시에서 표어들은 소리높이 외치고 있다.

개성백화점, 과실 남새상점, 리발관, 책방, 약국, 영화관, 양복 조선옷 전문, 고려약공장 등 곳곳에 간판이 보인다. 아주 드물게 시민들도 볼 수 있다. 시내가 넓지 않아 한 시간 정도면 다 걸어갈 수 있다는데, 자전거 이외의 교통수단은 없는 것 같다. 깡마르고 무표정한 시민들이 우리가 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한다.

도시에서의 이질감은 문화유적을 접하면서 풀려간다. 유적지의 나무들은 잘 보존돼 있다. 고려박물관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 느티나무 들이 깊은 그늘을 만들고, 선죽교 주변과 박연폭포 산길도 숲이 울창하다.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가 다투어 피어있는 꽃밭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꽃밭을 연상케 한다.

전통적인 개성 음식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오늘의 개성 음식에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광지의 음식으로 실망스런 수준은 아니다. 배추 된장국, 오이소박이, 두부부침 등 소박한 음식이 맛있었다.

개성관광은 금강산 관광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정해진 코스를 돌아볼 뿐이지만 문화 유적들을 통해 역사를 공유하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개성시내를 오가며 북한 주민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북측에 현금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에 반대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그러나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의 흙을 밟고, 산천을 보고, 바람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북한에 갈 수 없던 지난 육십여 년을 되돌아 본다면 지금 제한된 관광이나마 북한에 갈수 있다는 것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그러나 개성 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듯하다. 북한은 갑자기 현대아산의 관광사업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북한은 잘못 판단하고 있다. 북한은 현대아산이나 몇몇 특정인물을 상대하기 전에 관광에 나서는 남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관광에 나서는 것은 관광 이상의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금강산이 천하 절경이어서 100만 명이나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남한 사람들의 마음이 싸늘해지면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은 현대아산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 관광은 한 기업의 대북사업 수준이 아니다. 전세계를 관광하고 있는 남한 사람들이 왜 북한을 보고 싶어 하나. 북한은 ‘개성 가는 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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