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가 일어난 지 꼭 4년이 됐다. 테러 현장에서 숨진 무고한 목숨, 거기에 대응한 보복 전쟁. 9ㆍ11 테러는 세상을 전쟁과 폭력과 증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세계는 아직도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다. 9ㆍ11 테러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 9ㆍ11 테러 발발 4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
♣ 거룩한 테러
"부시와 빈 라덴 福을 빌어 폭력" 종교의 한계·역기능 보여줘
테러 앞에 거룩하다는 형용사를 붙인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 시카고대 종교학 교수 브루스 링컨이, 종교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부시와 빈 라덴의 연설 등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알카에다와 부시의 유사성이다. 9ㆍ11 테러 직후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한 연설은 이랬다. “모든 나라는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싸움에 중립지대란 없습니다.” 부시의 연설 직후 알자지라를 통해 방송된 빈 라덴의 연설은 이랬다. “저는 이번 일이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고 말합니다. 신실한 자들의 진영과 불신자들의 진영입니다.”
링컨은 이 대목에서 부시와 빈 라덴의 세계관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한데도, 둘 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사성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미국 CBS 사장 제리 팔웰과 남침례교 지도자 팻 로버트슨 목사의 대담은 그 좋은 예다.
이들은 빈 라덴과 이슬람이라는 외부의 적 뿐 아니라 유색인종, 여권운동, 동성애자 등을 미국을 교란시키는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서구에 협력하는 중동 국가의 수장이나 그러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을 위선자라 부르며 주된 적으로 공격하는 이슬람 지도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미국 보수주의자와, 중동 테러리스트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막상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저자는 종교의 본질을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종교는 긍정적 차원뿐 아니라 잔인한 폭력을 성스러운 의무로 둔갑시키는 부정적 기능을 지녔다.
종교는, 성스럽다고 여겨지지만 실은 실패와 한계와 모순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엄연한 인간적 시도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테러’는 부시와 빈 라덴이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윤성 옮김. 돌베개 1만5,000원.
♣ 102분
장애인 친구와 운명을 함께… 생존·사망자들의 사연 소개
9ㆍ11 테러 당시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스토리다. ‘거룩한 테러’가 9ㆍ11을 계기로 종교의 본질을 탐구하는 저작이라면 이 책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증언을 통해 급박했던 순간들을 재현하는 구체적 증언의 모음이다.
그날을 기억한 많은 글이 대부분 외부 관찰자의 시각에서 작성된 데 반해 이 책은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다.
생존자와 목격자의 인터뷰, 무전교신, 전화 메시지, 육성 증언의 필사본, 이 메일 등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1만2,000여명과 세상을 떠난 2,749명에 대한 감동적이고 객관적인 무용담을 들려준다.
‘내려가야 하나. 올라가야 하나. 아니면 사무실에 그대로 있을까. 내려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까…’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시시각각 위험과 대면하는 순간마다 생사가 달린 문제를 판단해야만 했다.
테러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자 마자 재빨리 1층 로비로 내려왔으나 이 건물은 안전하다는 경비원의 말을 듣고 다시 위로 올라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그를 구하러 갔다가 자신의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다. 엄청난 사태 앞에서 생명은 아주 조그만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위험과 우연의 세계에서도, 살고자 하는 본능만이 남아있는 그 순간에도 인간애는 살아있었다. 장애인 친구 옆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고, 목발을 짚은 여성을 54층에서부터 줄곧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온 사람도 있다. 테러 비행기의 건물 충돌 후 102분 동안 벌어지는 한편의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이 같이 따뜻한 인간애와 희망이었다.
‘무역센터 홍보 관계자들이 ‘이 건물은 보잉 707기가 충돌해도 끄떡 없다’고 홍보했다는 사실 등 새로운 내용도 공개된다. 저자 짐 드와이어와 케빈 플린은 현직 뉴욕타임스 기자들이다. 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1만4,500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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