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가 풀어내는 이미지의 향연은 경탄스러웠다.
새파란 하늘 아래 색색의 염색 천들이 휘날리고 장터에서는 탈놀음이 한창이다.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묘령의 사내가 금불상을 훔쳐내고 껄렁해 보이는 여형사를 포함하여 도처에 매복해 있던 좌포청의 형사들이 그의 뒤를 쫓는다. 사내는 수레에 가득 실려있던 돈더미를 장터에 뿌리고, 행진곡과 장구 장단이 깔리는 가운데 군중들이 마치 럭비선수인양 돈을 가지러 몰려드는 모습을 카메라는 속도감있게 ?어 낸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 다발로 자극하는 인상적인 도입부의 이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형사Duelist'(제작 프로덕션 M)이다.
좌포청의 선머슴같은 여형사 남순(하지원 분)과 베테랑 형사 안포교(안성기 분)는 시중에 가짜 돈을 유포시킨 범인 색출의 임무를 띠고 있다. '슬픈 눈'(강동원)이라 불리는 자객이 수사의 물망에 오르고 그의 뒤에는 병판대감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여형사 남순과 자객 '슬픈 눈'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예사롭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쫓고 쫓기는 만남이 거듭될수록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은 깊어져 간다.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인 '돌담길' 대결 신에서 이루어지는 남순과 '슬픈 눈'의 칼싸움은 마치 헤어짐을 앞둔 연인의 안타까운 정사를 연상시킨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검과 검의 대결을 통해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검대결 신에는 별다른 대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서로를 갈구하는 듯한 때로는 원망하는 듯한 눈빛과 안고 싶어하는 몸짓, 그리고 사랑의 희열을 표하는 숨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이 공들인 조명아래 환상인 듯 실제인 듯 펼쳐진다.
영화 '형사 Duelist'에는 검대결 신외에도 관객의 숨을 턱 멎게 하는 유려한 영상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저런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이명세 감독이 강동원을 연모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그가 연기한 '슬픈 눈'은 매혹적이고, 떠버리 안포교를 연기한 안성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로 그가 왜 '국민배우'로 불리는가를 확인시켜주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몇가지 의문. '슬픈 눈'은 왜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까, 남순이는 왜 껄렁패로 설정되었나, '슬픈 눈'은 왜 병조판서를…(스포일러가 될수도 있을 것 같아 뒷 부분은 줄입니다). 자꾸만 줄거리와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기자에게 내러티브 집착증이라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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