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계기로 연정 구상의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은 8일 멕시코로 향하는 특별기에서 “당분간 연정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로써 정국을 뒤흔들었던 연정론은 일단 잠복하게 됐다. 노 대통령이 6월24일 당정청 수뇌부 모임에서 연정론을 제기한 뒤 2개월 보름만의 일이다.
노 대통령이 이런 판단을 내린 데는 연정의 상대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면전에서 단호히 거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연정론을 꺼낸다면, 비정상적이라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는데다 연정론 제기의 진정성이 오히려 훼손될 수도 있다. 각종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협력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법 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침묵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최소한 열흘 간의 해외 순방 기간에는 연정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이 해외 순방 후 군소야당 대표들과 연쇄 회동을 갖는 자리에서도 본격적으로 연정론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청와대측이 “대연정을 접는다고 해서 민노당, 민주당과의 소연정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 대목이 이 같은 흐름을 시사한다.
하지만 연정론은 휴화산이라는 게 청와대의 풀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언급을 덕담으로 봐 달라”며 “당분간 호흡조절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 예상으로는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지만, 여야가 협력할 수 새로운 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연정이 추구하는 결과를 얻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외곽을 때리는 전략이다.
그런 수단 중 하나가 선거제도 개편논의다. 노 대통령도 “선거제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에서 여당이 선거구제 개편을 제기할 것이라는 얘기다.
야당과의 정책연합이나 사안별 정책공조, 야당과의 당정협의도 상생 정치의 차원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선거제도 개편논의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나 정책공조 제의마저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어 정기국회에서 전개될 정치게임이 주목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 대통령이 금년 말이나 내년 초에는 탈당이나 개헌론 제기 등의 ‘히든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지금 개헌을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개헌논의 시점을 2006년으로 설정해놓았다.
이런 흐름 때문에 노 대통령의 침묵은 중단이나 종지부가 아닌 결정적 상황을 기다리는 일시적인 정지로 이해되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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