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제사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한다. 그 윗대는 철마다 종묘 제사(時祭) 때 모신다. 하지만 나라에 공이 커서 임금이 영구히 제사를 지내라고 허락할 경우 집안 사당에 그 신위(神位)를 모셔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하고, 해마다 불천위 제사를 지냈다. 대개 유서 깊은 종가인 그 집들은 일, 이백년은 훌쩍 넘는 고택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차 문화와 고택 보존에 애쓰는 이연자(60)씨가 종가와 맺은 인연이 올해로 7년째다.
요리전문 잡지인 ‘쿠겐’에 1999년 8월부터 ‘뿌리 깊은 종가의 맛을 찾아서’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찾아 다닌 종가만 70곳이 넘고, 그 글을 묶어낸 책만 네 권이다. ‘종가 이야기’ ‘명문 종가를 찾아서’ ‘명문 종가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 낸 ‘명문 종가 사람들’은 19곳의 종가 탐방기를 담았다.
종가의 내력과 고택, 종가집 음식을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이 그 동안 이씨 책의 기본 구성이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 틀을 유지하면서도 ‘솟을대문을 활짝 열어 젖힌’ 종가를 부각한 것이 눈에 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만석꾼 집이었다는 밀양 손씨 종가의 사랑채에서 전통의 7첩반상(상 위에 뚜껑 덮는 음식이 7가지)을 받을 수 있고, 솔향기 솔솔한 만산 고택에서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며 아련한 추억 속에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전주 이씨 이국손 종가에 가면 붓글씨로 쓴 가훈을 받아 올 수도 있으며, 박물관으로 거듭난 이원익 종가에서 청백리 정신을 배울 수 있다. 문화관광지로 단장되는 경북 봉화의 성이성 종가, 가정 교육의 집으로 거듭 나는 전남 영광 이국손 종가, 청소년 전통 체험 교육장이 된 경북 성주 김용초 종가 역시 발전적으로 거듭 나는 종가집의 면모를 보여준다.
종가는 전통시대 질서에 얽매인, 특히 여성을 억압하는 개념이라고 비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종가집 종손들이, 또 그 자제들이 고택을 지키면서 갖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암행어사 박문수의 8대 손 박용기. “제사의 큰 줄기는 정신입니다. 조상을 기억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친지들을 만나면서 핏줄을 확인하는 축제 같은 자리가 바로 제사가 아니겠습니까.”
올해 3월 경북 안동 임하면 천전리 의성 김씨 대종택에서 머리에 관을 세 번 갈아 쓰고, 옷을 세 번 갈아입는 삼가례(三加禮) 격식을 갖춰 관례(冠禮)를 치르고 비로소 어른이 된 종손의 아들인 재미 유학생 관석(20) 군의 소감. “오늘의 감회는 몇 마디의 말로써 표현하기 무리인 것 같아요. 마음에 담아두고 조금씩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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