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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 동네 산·강·사찰에 전설이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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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 동네 산·강·사찰에 전설이 주렁주렁

입력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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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아 강물아 이야기를 내놓아라/ 양태석 글. 전병준 그림. 해와나무.

▲ 산 너머 산 이야기 너머 이야기/ 우봉규 글. 전병준 그림. 해와나무.

▲ 절마다 이야기 구구절절/ 이슬기 글. 전병준 그림. 해와나무.

경주에 가면 길을 잃는다. 번화가 바로 옆에 옛 임금의 무덤이 모여 있고 차들이 씽씽 달리는 7번국도 옆에 황룡사지가 있다. 너른 들판에 이름도 모르는 석탑이 서 있는가 하면 무심코 가다 ‘사적 발굴 예정지’라는 팻말과 함께 막다른 길을 만나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경주에서는 늘 시공간적으로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나 지도도 없이 동서남북 감도 없이 무작정 걷다 만나는 유적지가 좋다. 그 곳에는 석가탑과 다보탑만이 아니라 영지에 석가탑 그림자 비치는 날만 기다리던 아사녀의 전설도 얽혀있기 때문이다.

위 세 권의 책은 우리 산과 강, 절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한다.

금강산 명경대에는 어떤 전설이 있을까. 아무리 살아생전 죄 지은 자들을 가려 지옥에 보내도 나쁜 짓 하는 인간이 줄어들지 않자 염라대왕은 사람들이 죽어 심판받을 때, 평생 한 일이 한 순간에 그대로 비치는 거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궁리 끝에 인간세계에 자신이 심판받는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기로 한다.

그리하여 염라대왕은 금강산 장안사 남쪽에 황천강을 만들고 냇물 위에 앞뒤 모양이 똑같은 거울 모양의 큰 바위를 세웠으니 그 바위가 바로 명경대다. 죄 지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죄 짓는 것을 염려하는 염라대왕의 모습이 새롭다.

자연과 관계된 전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임진강의 화석정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던 이율곡의 지시로 관솔이 많은 소나무로 짓고 피마자기름을 발랐다. 왜란이 일어나고 몽진에 오른 임금이 한밤중 임진강가에서 배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화석정에 불을 놓아 오래오래 타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 고을의 내력, 자연환경의 특색, 뛰어난 인물 등에 대해 이야기하여 역사, 지리적 특징이 드러나는 것이 전설이 일반 민담이나 신화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전설은 읽는 재미는 물론이고 내가 사는 고장과 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키워준다.

읽는 내내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내용이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지는 못하는 것이 문명에 길들여지느라 옛것을 잃으며 살아온 세대의 현실인지, 공부한다며 일찍 부모 곁을 떠난 나만의 문제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부모님께 마을의 전설 한 자락 들어보면 어떨까. 그러면 돌아오는 길에는 길가나 산 속의 입석이나 고목 한 그루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의 일들로 미래의 전설을 하나씩 꾸며보면 지루한 길 위에서 한바탕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책 칼럼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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