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하시는 거죠? 이 나이에 알츠하이머라니요?”
10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을 당시 크리스틴 브라이든의 나이는 마흔 여섯이었다. 호주의 내무부 제1차관보로 과학정책을 좌우한 엘리트 여성. 그녀에게 알츠하이머는 청천벽력이었다.
놀라운 기억력을 자랑해온 그녀지만 알츠하이머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순간순간 기억이 사라지고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몰라 당황한 적도 많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이혼의 아픔을 이기고 투병생활 도중 재혼도 했다. 새 남편과 함께 치매환자를 돕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으로 냈다. 치매 환자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고 존엄한 생활을 유지하도록, 또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조기 발견과 신속한 대처로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나타나는 치매 증상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대화할 때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보통이었다.
쇼핑을 할 때도 메모가 없으면 안됐다. 일기를 보지 않으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랐고, 이웃과 산책을 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였다. 지붕을 고치기 위해 수리공에게 전화했다가 순간적으로 누구와 전화하고 있는지 기억 나지 않아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했다.
비 소리를 잘못 들어 정원 배수관이 터진 줄 알고 양말을 신은 채 뛰쳐나가기도 했다. “엄마 그때 몇 살이었지?”하고 묻는 딸에게 “네 시 반이었어”라고 대답하고, 운전 도중 이 페달이 무엇이고, 저 페달이 무엇인지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생각나지 않아 망설이기도 했다.
사회적 편견도, 동정심도 힘들었다. 뇌세포가 얽혀 일어나는 병 알츠하이머. 정신 뿐 아니라 신체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숨쉬는 방법마저 잊도록 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병인데도 사람들은 기억력만 조금 떨어뜨릴 뿐이라고 믿는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난처해 할 때 “나도 그럴 때가 있어”하며 맞장구 치는 친구를 보면서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동정이라며 씁쓸해 한다.
이 책은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의사나 가족 등 제3자의 관찰기와 다르다. 스스로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공개하고 심리적 갈등을 소개한다.
그녀는 자신의 고백처럼, 언젠가 가족과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사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치매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어도 치매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능동적 자세 때문에 크리스틴은 2003년 치매환자로는 최초로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 이사로 선출됐다.
14일에는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제11회 세계치매의날 국제심포지엄에 초대돼 자신의 병과 투병생활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치매와 알츠하이머
치매는 일종의 지능 장애로 기억과 이해, 계산능력의 저하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질병의 하나로 노인 치매 원인 가운데 가장 흔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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