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훤히 보이고… 문 잠기고… 수유실 '허울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훤히 보이고… 문 잠기고… 수유실 '허울뿐'

입력
2005.09.09 00:00
0 0

생후 4개월된 아기 엄마 이모(30)씨는 최근 한국고속철도(KTX)의 고속열차로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서울 용산역 신청사 내 수유실에 들렀다. 이곳에 수유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안고 들어섰지만 이내 실망했다.

안내 표지판도 눈에 띄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간 수유실은 통유리를 통해 안이 훤히 비쳤다. 이씨는 “내부 시설도 빈약하고 바로 옆 놀이방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바람에 젖 먹이기도 쉽지 않았다”며 “이 정도면 그냥 ‘휴게실’로 부르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모성보호를 위해 다중이용시설에 앞 다퉈 마련되고 있는 수유실 중 일부가 무성의한 설치와 관리 소홀로 제 몫을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수유실이 있는 전철역은 용산역을 포함, 5호선 광화문역과 7호선 고속터미널역 등 3곳. 광화문역과 고속터미널역 수유실은 지난해 1월 말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공공장소에 모유 수유실을 설치해 달라는 시민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여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2곳은 요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개장 당시 한국모유수유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크게 반겼지만 현재 이곳에서 젖을 먹이는 엄마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불 꺼진 고속터미널역 수유실 유리문에는 “수유실을 이용하실 분은 대합실 중간에 있는 역무실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역무실 관계자는 “문을 열어 놓으면 노숙자들이 마구 들어가 청소 등 관리가 되지 않는다”며 “아기 엄마들이 요구하면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사원 정은주(여ㆍ29)씨는 “아기 젖 한번 먹이려고 역무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부탁하는 건 여간 번거롭지 않다”며 “항상 불이 꺼져 있는 수유실을 보면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몇 공항과 서울역의 경우 이보다는 나은 편이다. 김포 인천 제주 등 국제공항은 안내방송과 책자 홍보로 항공기 이용객들이 하루에도 10~20명씩 꾸준히 찾고 있다. 서울역도 정기적인 소독과 수유실 전용 부스 설치 등 마음 놓고 편안히 수유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 하루 10명 이상의 아기 엄마가 찾고 있다.

한국모유수유협회 회장 김혜숙 박사는 최근 늘어나는 수유실 설치를 반기면서도 일부에서는 이를 생색내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박사는 “문도 안 열어 놓고 아기엄마를 기다리는 수유실이라면 전시 행정의 표본으로 불러야 할 것”이라며 관리 소홀과 무성의를 꼬집었다.

김 박사는 “적당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아기 엄마들이 언제나 편안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모유권장 캠페인을 벌여 온 시민단체들과 협의, 자원봉사자들을 상주시켜 소홀한 관리와 홍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