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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이순신 장군의 자살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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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이순신 장군의 자살說

입력
2005.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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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순신 장군의 자살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충무공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선조가 그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근거한 것이다. 이런 추측은 왕조시대에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개국한 한신은 ‘상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큰 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토사구팽’이라는 고사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 사건은 후세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더욱이 왜란 중에 역모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보며, 장수들은 더욱 침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한 일간지가 자살설을 부정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 동안 ‘자살설’의 근거가 되어온 ‘김충장공유사(金忠壯公遺事)’의 원문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자가 “원문의 ‘이순신방전면주(李舜臣方戰免胄)’ 중 ‘면주(免胄)’는 ‘갑옷을 벗다’가 아니라 ‘투구를 벗다’는 뜻”이라면서 “실제 투구를 벗었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결사적으로 싸웠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진(晉)나라 장수 선진이 ‘투구를 벗고 오랑캐의 군사 속으로 쳐들어가 전사했다(免胄入狄師死焉)’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선진의 죽음에는 속사정이 있다. 기원전 627년, 진(晉) 양공은 진(秦)의 원정군을 기습하여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진(秦)나라의 공주였던 양공의 어머니는 기쁘지 않았다.

아들에게 포로 방면을 부탁하고, 뜻을 이룬다. 다음 날 총사령관인 선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한다. ‘군사들이 죽기로 잡은 것을 아녀자의 한 마디에 놓아주니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는 임금 앞에서 침을 뱉었다. 양공은 실책을 통감할 뿐, 선진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선진은 충신이었다. 몇 달 뒤 그는 적(狄)에 출전하며 말하길, ‘임금에게 무례했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으니 스스로 처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면주’하고 적에게 뛰어들었다. 이 기록은 자살을 의미하는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김충장공유사’를 쓴 분은 대제학을 지낸 분이니 이 고사를 아시고 인용하셨을 것이다.

이 문제는 이쯤하고. 개인적으로 더 관심 가는 일은 충무공 전승기념일을 제정해 국제적인 행사로 치르는 일이다. 러일해전 승전 100주년 기념식에 러시아를 불러 앉힌 일본을 보니 더욱 그러하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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