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여행 - 내 마음 속 고향 '민속마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여행 - 내 마음 속 고향 '민속마을'

입력
2005.09.08 00:00
0 0

태풍이 지나니 훌쩍 가을이다. 더욱 파래진 하늘, 추석도 코앞이다.

매년 맞는 추석이지만, 이 시기의 여행은 평소와는 차이가 있다. 앞만 보며 달려 온 삶에 대해 한번쯤 쉼표를 찍고, 마음을 다잡는 의미가 부여된다.

지루한 불경기의 연속으로 마음도 편치 않다. 요란한 여행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이런 시기에 가장 적당한 여행테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아닐까. 그래서 추천하는 곳이 민속마을이다.

왜 민속촌이 아닌 민속마을인가? 민속촌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관광지이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동선을 고려하기도 하고, 건물 구석 구석을 잘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짙다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현실과 괴리된 곳, 결국 허상을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억누를 길 없기 때문이다. 마치 박제 동물원에 온 듯한 느낌이랄까.

민속마을은 외견상으로는 민속촌과 비슷하지만 그 속내는 엄연히 다르다. 처음 느끼는 인상은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마을 입구에 경운기나 차량이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고, 쓰고 남은 비료 포대가 담장 위에 널브러져 있다. 화려한 볼거리도, 전문가들이 펼치는 민속 공연도 없다.

민속마을에는 사람이 있다. 여행지에서 주민을 직접 만나면 여행의 질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들이 삶, 그들의 땀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서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곳, 그래서 민속마을은 생동감이 있다.

그 곳 사람들은 시대를 거슬러 가는 길을 택했다. 웬만한 시골에서도 아파트를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여기는 아예 시대를 역행한다. 전국 대다수 마을이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지붕 개량을 하고 편리함을 얻었지만 민속마을 주민들은 매년 초가 지붕의 짚단을 다시 입히는 수고를 사서 해야 했다.

세인들은 주민들을 고지식하다고 나무랐지만 그들은 단지 전통을 잇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전국의 몇 남지 않은 민속마을 중 하나인 그 곳이 21세기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받게 된 것은 그 뚝심덕이다.

시간이 멈춘 곳에로의 여행, 느림의 미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산=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민속마을, 아산 외암·순천 낙안읍성

♡ 외암민속마을(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충청도 양반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외암 민속 마을은 마을이 자리잡은 터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을의 진산(珍山)인 설화산을 배경으로 월라산, 면잠산, 봉수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앞에는 반계(磐溪)라는 개울물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포근하고 아늑하다.

마을의 원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말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대기하는 역말이 이 곳에 있었다. 외암이라는 단어도 외양간을 뜻하는 ‘오양골’에서 ‘오야골’을 거쳐 ‘외암골’로 바뀐 것이다.

세도 있는 양반들이 명당 자리를 모를 리 없다. 당시 충청 지역에서 제법 권세를 누리던 예암 이 씨 가문이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집성촌을 이뤘다. 현재 65가구 18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 들면 성큼 다가온 가을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다. 마을 입구의 드넓은 벌판에는 속이 꽉 찬 나락이 무게를 못 이겨 축 늘어졌다. 색깔도 초록빛이 엷어지고 누런빛이 짙어졌다. 초가 지붕과 담장을 따라 주렁 주렁 달린 호박에서 풍년을 예감한다. 마을 어귀의 코스모스가 가을을 재촉한다.

마을 안으로 한 발짝 들일 때마다 외암의 진가는 속속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전역을 둘러싼 담장이다. 전체 길이가 6.5㎞. 전국 최대 규모이다. 그 많은 재료를 어디서 가져다 왔을까 궁금했는데, 만들어 진 과정이 재미있다. 이 일대는 원래 호박돌이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척박한 땅이었다.

집터를 조성하는 데 엄청난 호박돌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들은 처치 곤란한 돌을 담장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렇게 조성한 담장의 높이는 어른 키와 비슷하다. 사람을 압도하지도 않으면서 사생활 보호도 해준다. 진정한 일석이조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나는 개천조차 그냥 두지 않는다. 상류의 물을 끌어들이고, 집집마다 물꼬를 냈다. 사시 사철 집안으로 물이 흐르니, 활용도도 높았다. 생활 용수로, 때로는 방화수로도 쓰였다. 감나무, 호도나무, 밤나무 등 유실수를 마음껏 심으니, 먹거리 걱정도 덜었다. 물길이 가까이 있으니 안뜰이 넓은 집에서는 정원도 조성했다.

건재고택, 송화댁, 교수댁 등의 정원이 대표적이다. 특히 물길을 따라 소나무, 향나무, 단풍나무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건재(健齋:19세기 선비 이웅렬의 아호) 고택은 국내 민가의 정원으로는 최고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물길 주위로 나무와 돌을 놓아 꾸민 송화댁은 흔히 볼 수 있는 산속의 계곡과 닮아 있어 친근감이 간다.

살아 있는 민속촌을 영상에 담으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드라마 ‘장길산’ ‘임꺽정’ ‘덕이’ 등 국민 드라마가 바로 이 이 곳을 배경으로 담아 냈다. 어디서 봤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십중팔구는 맞다.

아쉬운 점도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 내부를 들여다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 관광객의 잦은 방문에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탓이다. 대신 마을 옆에 건재고택, 송화댁 등 주요 집의 내부를 그대로 본 따 새롭게 민속촌을 마련했다.

이 마을을 보다 깊숙이 들여다 보려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된다. 떡메치기, 공방체험, 고구마캐기, 추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손님 맞이에 나서고 있다. 마을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외암민속마을 관리사무소 (041)544-8290.

[여행수첩] 외암 민속마을… 맹사성 고택 온천이 지처에

경부고속도로 천안 IC에서 나와 국도 21호를 따라 20㎞가면 신도리코 앞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읍내동 사거리까지 간 뒤, 국도 39호와 송악 외곽 도로를 타면 외암 민속 마을과 만난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평택 IC에서 국도 39호를 이용, 온양 온천 지대를 지나 송악 나들목에서 읍내동 사거리로 간 뒤 송악 외곽 도로를 타면 된다.

연계 관광지로는 맹사성 고택이 있다. 고려말 무신인 최 영의 생가였으나, 조선초기 청백리로 이름난 맹사성의 아버지가 이 집을 인수, 대대로 거주하고 있다. 맹사성은 최 영의 손녀 사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사적 109호로 지정돼 있다. 수 백년 된 은행나무에 단풍이 들면 고택의 운치를 더한다.

아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현충사도 볼 만하다. 최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성공으로 충무공의 나라 사랑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터라 의미 있는 방문이 될 수 있다.

현충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충무공의 묘소도 있다. 다리품을 팔아 피곤해 진 몸은 온천으로 풀면 좋다.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이 지척이다. 아산시 문화관광과 (041)540-2565

♡ 낙안읍성민속마을(전남 순천시 낙안면)

마을 이름이 좀 별나다. 즐겁고 편안하다는 뜻의 낙안(樂安)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우선 지형부터 보자. 북막?금전산, 남으로 부용산, 동서로 제석산과 금화산이 감싸고 있다. 외암이 배산임수형이라면 낙안은 옥녀산발(玉女散髮)형이다.

주변 산이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에워 싸고 있다는 것은 전략요충지라는 의미. 조선 초기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았다. 이를 막기 위해 이 마을 출신 의병장 김빈길이 토성을 축조한 것이 읍성의 기원이다. 마을 둘레에 성을 쌓고서야 주민들은 편안할 수 있었다.

너무 편해서일까. 주민들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혔던 새마을 운동 때도 건물벽이 너무 낡아 수리 불가능 판단을 받고 좌절해야 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전화위복의 기회가 왔다. 500년 세월을 건너 뛴 원형 그대로의 민속 마을은 88올림픽을 앞두고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다. 1983년 마을 전체가 사적 302호로 지정됐고,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마을 전체의 보수는 물론 동헌, 내아, 객사, 향교까지 재현됐다.

외암마을과는 달리 낙안의 집은 서민적이다. 19세기 반상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제법 양반집 흉내를 내는 곳도 있다. 조선 남부 지역 민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입구인 동문(낙풍루)을 지나 처음 맞는 마을은 온통 초가집 천지이다. 성문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나그네를 과거로 이끄는 매개체이다. 수 백년 세월의 간극을 이리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조성된 연못에는 초가집 한 채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 지붕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뒷산의 완만한 선이 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저녁 반찬에 놓으려고 호박잎을 따내는 할머니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카메라 앵글에 담기는 장면 장면은 그대로 그림이 된다. 눈이 즐겁고 마음은 편해진다. 드라마 ‘상도’ ‘허준’ ‘용의 눈물’에 이어 ‘대장금’까지, 히트 사극은 거의 이 곳을 거쳤다.

낙안읍성의 둘레는 1.4㎞가량. 성내에 63가구, 성 밖에 22가구가 거주한다. 주민은 200명을 조금 넘는다. 많은 주민들이 생활과 생계를 이 곳에서 해결한다. 성내 곳곳에서 민박을 놓고 있고, 공방을 비롯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짚물공예, 길쌈시연, 천연염색, 대장간 등 전통 재현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전통 음식 팔진미는 낙안마을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먹거리. 금전산 석이버섯,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성북리 무, 서내리 녹두, 용추리 천어 등 8가지 음식을 일컫는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군수 물자 수송로 확보를 위해 낙안을 방문했는데, 주민들이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정성으로 맛을 내고 올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읍성내 3군데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내달 19~24일까지 이 곳에서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릴 예정이다. 낙안읍성사무소 (061)749-3347.

아산ㆍ순천=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여행수첩/ 낙안읍성마을… 주변에 선암사 등 名刹 많아

남해안고속도로 승주 IC를 나와 857번 지방도를 따라 직진하면 낙안읍성마을과 만난다. 주변에 송광사, 선암사 등 이름난 사찰이 많아 연계 관광을 하는 것이 좋다.

순천시가 운영하는 시티 투어에 참가하면 보다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다.

매일 오전 9시 40분께 운영되는 시티 투어는 2가지 코스로, 1코스는 순천역을 출발, 낙안읍성 - 고인돌 공원 - 송광사 - 순천역으로 돌아오며, 2코스는 순천역에서 순천만 - 낙안읍성 - 선암사 - 순천역순으로 둘러본다. 버스 탑승비는 무료이며, 각 관광지에서 개별적으로 입장료를 내면 된다. 순천시 문화관광과 (061)749-3328.

■ 민속마을, 경주 양동

유가의 법도와 선비 정신을 500여년 골골에 깊숙이 품고 다져 지금껏 그윽한 옛 향으로 지친 현대인을 감싸 안는 마을이 있다. 천년 고도 경주의 드넓은 안강들을 내려다 보는 양동마을이 그 곳.

설창산 자락에 안긴 마을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산자락이 말 물(勿)자 모양으로 갈라져 내려오는데 그 골 사이에 집들이 차곡차곡 들어섰다. 150여 채(한때

350여채까지 있던)의 큰 마을임에도 마을 입구에서 볼 때는 집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 연유가 여기 있다. 일개 성씨의 집성촌인 다른 민속 마을과 달리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성씨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마을의 위치가 물(勿)자형 산의 골짜기가 형산강 물줄기를 품어 들이는 형태를 하고 있어 재물이 쌓이는 지세라 한다. 그래서인지 양동 마을은 대대로 풍족했다.

10여리에 펼쳐진 안강 평야의 주인이 이 양동 마을 사람들이었다고. 넉넉함은 자손들의 교육에 아낌없이 힘을 쏟을 수 있게 했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 선생과 동방5현으로 손꼽히는 희재 이언적 선생 등을 포함해 과거 급제자만도 116명에 달했다.

양 집안의 선의의 경쟁이 학구열을 더욱 부채질했음은 당연지사. 손씨 집안이 서당을 세우면 곧 이씨 집안에서 서당을 세웠고, 이씨 가문에서 정자를 세우면 손씨 가문도 뒤질세라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땅이 평평치 않아 집들은 언덕의 위 아래로 들어섰다. 대부분 번듯한 기와집이 맨 위에 자리잡아 3~4채의 초가집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 양반댁 일을 돕던 외거 하인들이 주변에 살면서 생긴 공간 구조다.

이 마을에는 우물이 5개에 불과했었다고 한다. 수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풍수상 마을 모양이 배의 모양이라 우물 구멍을 너무 많이 뚫으면 배가 가라앉아 마을의 기가 쇠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덕 위에 있는 양반집들은 물지게꾼에게 만큼은 언제나 소홀치 않게 대접했다고. 지금은 모든 집에 수도가 연결돼 물걱정은 사라졌다.

마을을 찾았다면 꼭 둘러봐야 할 집들이 있다. 제일 안쪽 골짜기인 내곡에 있는 서백당(書百堂)은 이 마을에 처음 자리잡았다는 손소 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으로 특히 건넌방 자리는 3명의 큰 인물을 내는 자리라 했다. 손소 공의 둘째 아들 손중도 선생이 태어났고 그의 조카가 되는 이언적 선생이 이곳에서 나셨다.

이후 손씨 집안에선 남은 1명의 인물이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방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종택답게 안채 위쪽으로 사당을 모시고 있고 그 아래에 집과 같은 나이의 향나무가 영험한 모습으로 서 있다.

서백당에서 왼쪽 능선으로 조금 오르면 경산서당(景山書堂)이다. 대문에 걸린 구도문(求道門) 현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씨 가문의 서당으로 원래 이웃 안계리에 있던 것을 댐 건설로 이리 옮겨왔다.

서백당이 손씨 종택이라면 무첨당(無堂)은 이씨의 종택. 사랑채의 날아갈 듯한 처마와 정밀하게 조각된 난간들이 세련된 솜씨를 보인다. 대원군이 방문해 썼다는 죽필 편액인 좌해금서(左海琴書)가 걸려 있다. 가옥은 보물 제411호로 지정됐다.

또 다른 보물은 마을 입구쪽 언덕에 있는 관가정(觀稼亭ㆍ보물 제442호)).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이 커가는 것을 본다는 이름처럼 드넓은 논들이 발아래로 시야가 시원하다.

우재 손중돈 선생이 살던 곳이다. 인근의 향단(香壇)은 회재 이언적 선생때 지어진 고택. 연세든 모친을 모시고 싶다는 회재의 간곡한 청에 중종이 경상도 관찰사를 하며 모친과 함께 살라고 지어줬다. 99칸으로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지금은 56칸만 남았다. 보물 제 412호다.

대부분의 고택은 주민들이 살고 있어 방문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들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 오전 10시~오후 5시 사이에 둘러 볼 수 있지만, 살림하는 안채까지 출입불가다. 깨끗이 닦아놓은 대청에 신발을 신고 올라서는 일도 없기를.

마을 구경은 무료다. 마을 입구에 넓게 닦아놓은 주차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차장에 관광 안내소가 있어 문화 해설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경주시 문화관광과 (054)779-6062

경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민속마을, 안동 하회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조용한 전통 마을에서 관광지로 느닷없이 부상한 안동의 하회(河回) 마을. 이름 그대로 하천이 휘돌아 감싸는 물돌이 마을이다. 근엄한 양반과 일반 민중의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600여년을 지켜 온 양반가의 동네이면서도 민중 놀이인 하회 탈춤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기와집과 토담집들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풍산 류씨의 큰 종가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보물 제 414호) 등을 비롯해 130여 채의 고택에는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강변에 서애가 세운 원지정사는 낙동강과 그 건너 기암 절벽 부용대가 펼치는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마을도 많이 변했다. 경주 양동 마을의 하늘에 줄을 그어 대던 전신주와 전깃줄은 여기서 땅밑에 묻혀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하지만 골목길들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흙길의 촉감을 느낄 수 없고,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민박과 식당 등이 영업을 하느라 어수선하다. 지금 한창 마을 입구에서 터닦기 공사가 한창인 상가 단지로 마을 내의 식당과 상점들을 모은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마을 구경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하회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부용대에 올라보자. 강이 마을을 감싸는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 곳에서 보이는 하회는 번잡스러움 없이 조용하고 평안하다.

하회 마을은 3면이 강인데도 어지간해선 홍수 피해를 입지 않는다. 부용대 덕택이다. 강물은 부용대에 부딪혀 돌아나가는데 이 때 부용대가 물의 속도를 줄여 주고 물길이 마을로 향하는 것을 막아준다. 부용대 절벽 중간 부분. 설마 이 곳에 길이 있을까 싶은 데에 오솔길이 나 있다.

서애 선생이 기거했던 옥연정사와 서애의 형인 류운용 선생이 계셨던 겸암정사를 잇는 길이다. 형제는 이 곳을 오가며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지금은 절벽을 타고 내려온 뱀들이 많을 때라 피하는 것이 좋다며 뱀들이 땅 속에 들어간 11월에 다시 오라고 권유했다.

하회에서 볼 때 부용대의 정반대쪽에 잇는 병산 서원은 안동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 예서 보는 풍광은 부용대 그 이상이다. 서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자, 많은 이들이 가장 아름다운 서원으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배롱꽃 화사하게 물든 서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장쾌히 일자로 펼쳐진 누각 만대루가 버티고 섰다. 누에 오르니 길게 누운 산 밑으로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누각의 기둥 사이로 펼쳐진 광경은 마치 7폭의 병풍 그림을 보는 듯 황홀하다. 서원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이리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곳에서 학문에만 정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하회 마을은 입장료를 받는다. 성인 1인당 2,000원. 주차비는 2,000원. 안동 시청 문화관광과 (054)851-6393, 하회 마을 관광안내소 (054)852-3588

안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