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청와대 회담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오후 2시부터 청와대 본관 2층의 백악실 원형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뼈 있는 말을 주고 받으며 기 싸움을 벌였다. 민생 문제에 대한 평가, 지역구도 극복 방안 등 첨예한 주제를 놓고 입장 차를 보일 때는 격앙된 어조를 띄었다고 배석자들은 전했다.
노 대통령은 민생이 어렵다는 박 대표의 말에 “일반 국민이 그렇게 말하면 모르겠는데 야당 대표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잠시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야당이 엉터리 통계자료를 인용한다” “파탄위기라는 야당의 표현은 싸움하자는 얘기와 똑같다”는 격한 표현도 나왔다.
노 대통령과 박 대표가 이날 회담의 하이라이트였던 연정론을 두고 논쟁을 하면서 상대에 대한 구원(舊怨)을 언급한 대목은 회담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노 대통령은 작년 탄핵사건을 꺼내며 “한나라당은 내가 하야하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탄핵할 때는 한나라당이 정권 인수 의사가 있는 줄 알았다”고 연정을 거부하는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이에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야당인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삼지 않고 무시했다.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했다”고 반격했다.
이 와중에 그 동안 설로만 돌아다녔던 박 대표에 대한 노 대통령의 통일부 장관직 제의가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정권출범 초기) 통일부 장관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고 공개했고, 박 대표는 “정식으로 입각제의를 받지 못했다. 비공식 제의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며 “노선이 같아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박 대표는 회담 말미 노 대통령이 “대통령 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나도 20여년 곁에 있어봐서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맞받았다.
한때 웃는 장면도 있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해외 순방(8~17일)을 거론하며 “건강에 유념하시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생일이 9일(음력 8월6일)임을 감안, “생신인데 여행 중 맞게 됐다”며 생일을 축하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옛날에는 생일도 별로 챙기지 않았다”며 “나는 태어날 때 태몽도 없었다. 전설 없는 지도자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모처럼 웃었다.
박 대표는 회담 후 국회로 돌아와 “국민을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며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받들기 위한 것인데 이를 외면하면 정치인은 설 자리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노 대통령은 두꺼운 종이 3장에 쓰인 것을 넘겨가며 얘기를 했고, 박 대표는 평소 지니고 다니던 수첩을 갖고 오지 않았다.
배석했던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회담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각각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발언을 번갈아 소개하는 식으로 1시간 동안 브리핑을 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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