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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여자로 오해받는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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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여자로 오해받는 내 이름

입력
200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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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영자, 영채, 유경, 수연, 혜영 등의 이름을 들으면 우린 곧바로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병철, 성욱, 형섭, 철원, 강호 등의 이름은 큰 고민 없이 남자로 친다. 이처럼 우리가 그 이름만으로도 남자 혹은 여자로 구별할 수 있는 건 이름들에 등장하는 특정 음절들이 남성적 혹은 여성적 특성과 결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에게도 위의 음절들이 우리에게처럼 여성적 혹은 남성적 느낌을 줄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성적 혹은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음절의 성별학은 서로 다른 언어 속에선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떻게 다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럽의 여자 이름들이다.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해왔던 라틴어 문화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대부분 유럽의 여자 이름은 ‘~아, ~에, ~이’ 의 모음으로 끝난다. 율리아, 카타리나, 미하엘라, 사비네, 아멜리, 소피라는 이름은 그래서 100퍼센트 여자 이름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이에 반해 ‘~ㄴ, ~ㄹ, ~어’ 등의 음절로 끝나는 이름은 대부분 남자 이름이다. 슈테판, 마틴, 콜, 알렉산더, 피셔, 슈뢰더 등의 이름은 그래서, 이변이 없는 한 남자 이름이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의 서로 다른 음절별 성별 특성이 혼동을 유발할 때다. 예를 들어, 유럽에 살고있는 비유럽 출신 외국인이 ‘~아, ~에, ~이’의 음절로 끝나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 그는 그 이름 때문에 거의 자동적으로 여자로 오인 받게 된다.

내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남시’라는 이름은 ‘~이’라는 끝 음절로 인해 여태껏 독일인들에게 어김없이 여자로 오인 받아왔다. 내게 날라온 광고 편지, 이메일, 전화요금 계산서 등에는 내 이름 앞에 전부 ‘부인 (Frau)’ 이라는 호칭이 붙어있다.

독일인들에게 ‘남시’라는 이름으로 남자를 떠올리는 것은 예를 들어 우리가 ‘혜영’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만났을 때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언어가 갖는 서로 다른 음절별 성별 특성이 최근 우리 가족 중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가은’이라는, 우리에겐 명백해 보이는 여자 이름이 독일에선 그 끝 음절 ‘~ㄴ’ 때문에 남자 이름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 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확인되었던 것이다. 남자 아이들과 함께 호명된 가은이는 다행히 영문도 모른 채 첫 학교 생활의 흥분에만 흠뻑 빠져 있다.

김남시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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