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구리시 인창동 A아파트 34평형에 사는 직장인 황모(36)씨는 최근 새로 이사할 집을 찾느라 퇴근 후면 매일 주변 아파트 단지와 인근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 다니고 있다.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 2,000만원을 올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황씨는 보증금을 올려 줄 여력이 안돼 현재 보증금에 살 수 있는 다른 아파트를 찾아보고 있지만 주변 전세도 다 올라 결국 25~28평대로 줄여 이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러나 이마저도 나와 있는 물건이 별로 없어 일주일이 넘도록 이사갈 집을 찾느라 애를 태우고 있다.
‘8ㆍ31 대책’ 후폭풍이 전세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가을 이사철 전세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지만 서울 강남이나 목동, 분당, 용인 등의 경우에는 세제 강화를 골자로 한 강력한 정부대책에 부담을 느낀 매매 수요자들이 전세로 돌아서며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과 분당, 용인 등지에서 시작된 전셋값 상승이 서울 및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분당과 용인에서는 가격이 최근 수천만원씩 껑충 뛰고 있지만 시장에 나오면 곧바로 소진될 정도로 수요가 넘치고 있다. 분당 정자동의 E공인 관계자는 “정부 대책 이후 매매시장은 관망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대부분 아파트 전세값은 한달 전에 비해 평균 2,000만~5,000만원 이상 올랐다”고 강조했다.
구리시 토평동 S아파트 39평형은 1억6,000만~1억7,000만원이던 시세가 대책발표 후 1억8,000만~1억9,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1년 이상 시세변동이 없던 하남시 아파트들도 2~3주새 20평형대는 1,500만원, 30평형대는 2,000만원씩 뛰었다.
송파구 방이동과 강동구 상일ㆍ둔촌동, 노원구 중계ㆍ상계동 등도 평형대 별로 최근 한달새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 올랐다. 중계동 K아파트 32평형과 D아파트 41평형은 대책 발표 후에만 500만원과 1,000만원이 각각 상승했다.
개포동 G공인 관계자는 “정부 대책 여파로 매매는 문의조차 없을 정도로 조용하지만 전세물건을 찾는 손님은 줄을 잇고 있다”며 “이사철 수요가 늘면서 7~8월 가격이 계속 오름세였지만 대책 발표가 난 후에는 전세 문의도 더 늘어났다”고 전했다.
집부자에게 고통을 줘 주택 투기를 잡겠다는 8ㆍ31대책은 매매시장의 급등세를 꺾은 듯 보이지만, 서민층 주거비는 더 늘어나 전세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고 보유하면서 늘어나는 보유세 부담마저 임대료에 전가할 경우 세입자의 전ㆍ월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입자들의 주택 임대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은 일정 부분 있지만 전세대란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8ㆍ31 대책’에 따른 보유세 증가분이 그대로 임대료 전가로 이어진다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전세대란까지는 몰라도 서민들이 전ㆍ월세 살기는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해밀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수도권의 전세수요가 몰리고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이사철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지 세 부담을 우려해 집을 살 사람이 대거 전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른 면이 없지 않다”며 “전세대란 논란은 시장을 좀 더 지켜본 뒤에야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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