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인기 없는 ‘왕따 모델’이 됐지만 해외에선 오히려 대기 고객들이 줄을 선 ‘인기 모델’들이 적지 않다. 국내 시장 실패 요인이 해외에선 오히려 성공 비결이 된 경우도 있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상품을 통해 경쟁 없는 새 시장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상품으로 아직 개척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훌륭한 ‘블루오션’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상은 넓고 고객은 많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현대자동차의 아토스. 1997년 9월 출시된 아토스는 98년 4만6,586대나 팔렸지만 GM대우차 마티즈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2002년에는 3,441대로 추락한 후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현대차는 차 지붕을 높여 넓은 실내 공간으로 승부수를 걸었지만 이로 인해 생뚱맞게 나온 디자인은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이 높은 지붕의 경차는 인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인도 성인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장식인 ‘터번’을 벗지 않은 채 운전할 수 있는 차로 인기를 끌면서 사실상 인도의 국민차가 된 것.
현재 현대차 인도법인에서 ‘상트로’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아토스는 지난해 인도에서 10만4,748대가 판매되며 소형차 부문 정상을 지켰다. 올해에도 7월까지 인도에서 7만575대가 팔렸을 뿐 아니라 유럽 및 중동, 중남미로도 5만5,750대나 수출됐다.
현대차의 라비타와 베르나, 클릭 등도 마찬가지이다. 라비타(해외 수출명 매트릭스)는 1~7월 국내에선 407대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수출은 10배에 가까운 3만4,514대나 됐다. 베르나(해외 수출명 엑센트)도 7월까지 내수 시장에서 판매량은 모두 3,855대. 그러나 수출은 8만1,669대에 달했다.
클릭(해외 수출명 겟츠) 판매량도 1~7월 국내에선 7,243대에 그쳤지만 수출량은 11만2,376대에 이른다. 사실 클릭과 라비타는 지난해 현대차의 유럽지역 전체 수출 대수 36만5,411대 가운데 각각 32%와 10%를 차지할 정도로 현대차에게는 효자 차종이다. 차의 크기가 중요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선 좁은 도로 여건과 주차 공간 부족으로 작은 차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모닝과 쎄라토도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닝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1만8,530대. 그러나 유럽에선 5만8,628대나 팔렸다. 현대차의 아반떼XD에 치여 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쎄라토도 유럽에선 1~7월 1만7,837대가 판매돼 국내(1만3,487대)보다 30% 이상 많이 수출된 셈이다.
GM대우차의 칼로스와 라세티도 국내에선 큰 인기가 없지만 해외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미국에서 시보레 브랜드의 아베오로 판매되는 칼로스는 지난해 8월 6,509대가 판매되며 소형차 시장 판매 1위(점유율 46.6%)에 오른 이후 7월까지 12개월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미국 내 4,500개에 달하는 시보레 딜러와 친숙한 브랜드 이미지가 비결이다. 1~7월 전체 수출량은 14만4,431대로 같은 기간 국내 판매량 3,045대의 47배에 달했다.
라세티는 중국에서 많이 팔린다. 뷰익 브랜드의 엑셀르로 판매되며 1~7월 7만7,670대가 팔리면서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GM 승용차 판매량 16만4,488대의 47.2%를 차지했다. 중국을 포함해 이 기간 전체 수출량은 18만8,649대나 된다. 반면 국내 판매량은 1만2,252대에 불과했다.
쌍용차의 로디우스도 해외 시장에서 화려한 부활을 꿈 꾸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다목적용차량 로디우스는 한 달 내수 판매량이 400~800대 정도로 저조한 편. 그러나 지난달 수출량이 1,345대에 이르는 등 3~8월 수출량(6,024대)이 내수 판매(3,414대)의 2배를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모델별 쏠림 현상이 심해 인기가 없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 인기 모델 중엔 숨은 진주도 없지 않은 만큼 남들이 많이 사는 모델보다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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