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제·발탁인사… "지금 혁신중"
로마제국이 지중해 전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소(小)조직인 ‘백인대(百人隊)’가 백전백승의 전투력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가 많다. 백인대는 지금의 팀제와 흡사한 측면이 많다. 보고체계를 단순화 해 백인대 대장이 작전과 책임을 도맡는 것, 계장ㆍ과장 결재라인을 생략해 팀장이 업무를 관장하는 것, ‘효율적’이라는 면에서 똑같다. 지난 3월 행정자치부에서 시작한 팀제 중심의 조직개편이 정부부처로 확산되고 있다.
조직은 ‘혁신 중’ 지난 3월 팀제의 첫 테이프를 끊은 행정자치부를 비롯해 4일 현재 기획예산처,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국정홍보처, 조달청, 특허청, 소방방재청 등 8개 청 단위 이상 정부조직이 이미 팀제를 위한 개편을 마쳤고 노동부, 복지부 등도 곧 팀제 개편을 준비중이다.
팀 단위 조직을 신설하면서 정부의 ‘실ㆍ국장-과장제’가 민간 기업과 같은 형태인 ‘본부-팀’으로 형태가 바뀌고, 특화한 팀의 신설로 사회적 수요에 부합하는 부서명칭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서기관에서 이사관(4~2급) 고위 공무원이 주로 맡았던 과장급 간부 자리인 팀장의 임용범위가 일선 집행업무의 시발점인 5급 사무관까지 허용되면서 곳곳에서 발탁인사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 조직개편을 단행한 건설교통부는 기존 장관-차관-차관보-2실ㆍ9국ㆍ1단ㆍ7관을 장관-차관-1실ㆍ6본부ㆍ13관 체제로 바꾸고 과장자리를 없앴으며 그 자리를 5급사무관도 앉을 수 있는 팀장으로 채웠다. 이와 함께 정책조정과 본부간 현안 조율 기능을 담당하는 본부장회의인 정책조정위원회를 신설했고, 혁신업무를 총괄하는 혁신정책조정관도 만들었다.
이 밖에 투명행정 구현을 위한 정보화 국제협력관이 새롭게 들어서고 민원업무를 전담하는 고객만족센터, 투자순위 조정업무를 하는 투자심사팀 등이 선을 보였다.
기획예산처의 변화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1979년 경제기획원 시절 만들어진 예산실이 26년 만에 폐지됐으며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혔던 예산실장 자리마저 없앴다. 재정기획실과 예산실, 기금정책국 등 3개 실ㆍ국이 재정기획단이라는 한 개의 단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조달청과 특허청도 전통적인 계급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국, 과를 본부와 팀으로 개편하고 신속한 의사결정단계로 빠른 고객서비스 달성을 위해 조직 단련에 한창이다.
팀장 ‘막강 파워’ 팀제 시행의 가장 큰 장점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업무효율 제고. 조직을 성과 위주로 재편성, 실력 있는 인재를 윗자리에 앉혀 상벌을 확실히 하고 있다.
행자부의 경우 업무의 85%가 팀장과 팀원 선에서 전결 처리된다. 반면 장관은 업무의 2%, 차관은 3%의 전결권만 갖는다. 다른 중앙부처의 경우 대체로 과장과 담당 이하 직원의 전결권은 50%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듯 팀장에 권한을 몰아준 것은 공무원의 관행이던 ‘일 미루기’를 타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일선 팀장에 전결권을 몰아주는 덕에 장ㆍ차관은 정책업무나 대외적인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해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이 향상되는 부수익도 얻고 있다. 또 결재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짐에 따라 담당 공무원들의 시(時)테크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이다.
이러한 팀제의 시행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행자부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지난 5월 직원 5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직개편 관련 직원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56%의 직원이 “팀제 도입으로 조직 내 권위주의가 완화됐다”고 답했다. 반대로 권위주의가 강화된다고 말한 의견은 5%에 불과했다. 팀장-팀원 인사에 대해서도 합리적이라는 의견은 33%이고, 부정적인 의견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자부 관계자는 “아직 팀제로 전환된 부처가 적고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성과를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조직에 긍정적인 긴장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팀제가 성공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라인 단순화… 결재 줄서기 사라져
행자부 K팀장은 업무량이 늘기는 했지만 불필요한 과정이 크게 줄어 일이 훨씬 수월해진 느낌이다. 매일 오전 8시 일찌감치 출근하는 K팀장은 자리에 앉으면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체크 한 후 곧바로 ‘통합행정혁신시스템’에 접속한다. 이곳에서 모든 직원은 그날 할 일을 등록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성과에 따른 인사를 근거로 즉각적인 실적이 기록되고 평가되는 ‘통합행정혁신시스템’이다. K팀장은 담당 직원들이 전날 올려놓은 결재문서를 모니터로 검토한 후 보완할 점을 챙기고 상관인 본부장과 차관, 장관에게 동시에 결재 서류를 그자리서 전송한다. 퇴근 무렵 K팀장은 컴퓨터를 통해 본부장, 차관, 장관의 손길을 거친 결재서류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 통합행정혁신시스템에 오늘의 실적을 올리고 사무실을 나선다.
팀제가 도입된 후 5개월여가 지난 행정자치부의 일상이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업무가 단순명료해진 것이다. 장관까지 이르는데 며칠이 걸릴 지 모르는 결재시간이 계장과 과장을 대신하는 팀장의 등장으로 한나절 정도로 짧아졌다. 조직개편과 함께 시행된 전자결재시스템으로 동시간 결재도 가능해졌다. 팀제의 기반이 되는 엄중한 인사평가를 위해 그날 할 일을 설정하고 이를 얼마큼 달성했는지를 컴퓨터에 입력해 연말 평가 자료로 누적되는 과정도 일반 기업의 사무환경과 흡사하다.
이렇듯 공무원 사회가 팀제로 인해 경쟁력 있는 집단을 희구하게 되자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력만 인정되면 언제라도 팀장으로 발탁될 수 있는 인사개혁 덕분에 능률도 오르고 동기도 충분히 마련됐다” 며 반기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서기관 이상 간부급에서는 “지나친 경쟁이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정부조직에는 맞지 않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행자부 조직기획팀 관계자는 “과거에는 장관 결재를 받기 위해 간부 직원들이 부속실로 계속 전화를 걸고 애간장을 태우며 하루종일 차례를 기다리는 등 불합리한 점이 많았는데 팀장을 거쳐 곧바로 전산망을 통해 결재가 완료되는 요즘은 부속실 직원에게 미운 털이 박혀 결재를 못 받을까 걱정하는 풍경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직급을 뛰어넘는 팀장인사로 몇몇 부처에서는 팀원간 불화의 우려가 높아지기도 했다. 행자부에서 팀제가 시작되기 얼마 전 7급 시험을 통해 공직에 입문한 한 사무관은 “서기관 진급을 바라보고 갖은 고생을 했는데 팀제가 도입되면 팀장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젊은 사무관들과 다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니 걱정이 태산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기관 팀원 위에 사무관 팀장을 임명한 국정홍보처에는 후배를 상관으로 모셔야 하는 데서 오는 불화의 조짐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홍보처 관계자는 “이미 오랫동안 팀제를 시작하면 혁신인사가 있게 되고, 조직을 위해 어떤 것이 이로운가를 조직원들이 토론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일부 불만은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업무가 집중되는 달이면 팀장 혼자서 온갖 일을 다 해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며 “지난해 결산과 예산을 작성하는 9월까지 팀장들은 업무폭주로 죽을 맛”이라고 전했다.
몇몇 부처는 팀제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수 십년 간 길들여진 연공서열에 의한 인사와 조직을 포기할 수 없다며 팀제도입을 주저하기도 한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 “당분간 팀제로 전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하며 팀제가 신속한 업무처리에는 효과가 있지만 포괄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견을 수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양홍주기자
■ "팀제로 능동적 분위기 넘쳐"
"사실 인사발령이 나기 하루 전날 팀장 승진 얘기를 듣고 그냥 팀원으로 남아있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1일 전면 팀제로 개편된 건설교통부에서 사무관(5급) 신분으로 과장급(서기관 이상) 보직으로 발탁돼 화제가 된 권혁진(37ㆍ사진) 신임 국제협력팀장은 갑작스러운 ‘’ 에 부담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행정고시 39기로 1996년 건설교통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올해까지 줄곧 토지관리과, 주택정책과 등 건교부 내에서 가장 일이 많기로 소문난 부동산정책 담당 자리를 지켜온 권 팀장은 8ㆍ31 부동산대책 발표를 위한 기초정책 입안을 꾸민 ‘실력자’ 가운데 한 명.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부동산MBA를 공부하고 돌아와 이론무장도 확실한 권 팀장은 1년이면 340일 정도 쉬는 날 없이 출근하는 성실함을 인정 받아 유례없는 발탁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는 평이다.
권 팀장은 “공무원 조직에서 엘리베이터식 승진을 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처음에 반대를 했지만 조직혁신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팀장 승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며 “팀제 도입으로 훨씬 능동적이고 새로운 분위기가 넘쳐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또 “일이 많은 부동산 관련 분야에서 떠나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국제협력팀을 맡게 돼 기쁘다” 며 “아내는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더 많아졌다며 승진한 것보다 부동산 관련 부서를 떠나게 된 것을 더욱 좋아한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팀원으로 남은 서기관 선배 한 명이 같은 팀에서 일을 할 뻔 했지만 서로 관계가 불편해질 것을 우려해 이번 인사에서 그 분을 다른 옆 팀으로 옮겨줘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양홍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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