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도자들은 14~16일 뉴욕에서 열리는 ‘새 천년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유엔은 이번 회의가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담한 결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회의 의제를 담은 초안은 지난 7월 영국 글렌이글즈에서 합의한 빈곤국가의‘원조와 외채’에 대한 입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합의의 진실이 드러났다. 이번 정상회의는 아마도 값비싼 실패로 힐난받게 될 것이다.
G8은 2010년까지 빈국에 대한 원조액을 연간 최대 480억 달러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 같은 결정을 의회에 밝히면서 “외채가 많은 빈국들의 다중채무 전액을 삭감하는 방안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조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
먼저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최근 재무위원회에서 원조액 증가분에 탕감 부채를 포함시킨다는 깜짝 놀랄 만한 결정을 내렸다.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탕감액만큼의 돈이 ‘원조’로 둔갑한 셈이다. 원조 예산의 3분의 1이 부채 상환 지원금으로 구성돼 있는 프랑스의 경우도 원조금의 상당 부분은 돌려 받지 못할 것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장부상의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부채 탕감은 블레어가 주장한 것처럼 추가적인 원조가 아닌 것이다.
둘째, 원칙적으로 18개 국에만 적용되는 100% 탕감 계획도 알고 보면 연간 상환해야 할 원리금에서 단지 10억 달러만 줄이는 것뿐이다. 게다가 최근 유출된 세계은행(IBRD) 보고서에 따르면 G8 국가들은 18개국에 대해 단지 3년치의 채무 면제에 합의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ADB)에 대한 채무만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다른 기관에도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채 탕감 계획이 보건과 교육을 위한 재원 문제를 해소시켜 줄 것이란 주장 역시 기만적이다. 합의 사항에는 채무 면제 혜택을 받는 국가들에 대해 동일한 금액만큼 원조를 삭감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뿐 아니라 이 나라들은 IMF나 세계은행이 지정한 조건에 동의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정부기구(NGO)인 유로대드(Eurodad)의 최근 보고서는 세계은행의 원조를 받기 위한 추가 조건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58개 항목의 조건만 충족시키면 원조를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130개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조사 대상 13개국 중 11개 국이 세계은행의 차관을 받으려면 민영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부채 탕감 조건 추가 문제는 정상회의 다음 주에 열리는 IMF 연례 총회에서 핵심 의제로 논의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빈곤 국가들이 이제는 자유롭게 자신들의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블레어 총리와 브라운 장관의 주장이 허구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는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은행의 차관과 채무를 면제받기 위해 강제적인 무역 자유화를 실시한 결과 2,72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정상회의 초안에는 이와 같은 조건들을 철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다루는 내용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몇 주만 지나면 또 거대한 압력이 몰아닥칠 것이다.
마크 커티스 미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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