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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데라야마 슈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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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데라야마 슈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입력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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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ㆍ1935~1983)는 낯선 이름이다. 일본에 여러 해를 살아 제법 안다는 사람에게 물어도 “글쎄”다.

출판사에 따르면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쳐 일본 문단의 반항아로 당대 젊은이의 우상이었다. 일본 본토의 북단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일찍이 알코올 중독으로 숨지고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객지로 떠난(탄광촌과 미군 기지 등에서 호스티스를 했다고 한다) 10대 초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교시절에 하이쿠와 단가로 문학적인 재능을 뽐낸 이후 연극, 영화, 소설, 평론, 방송, 경마, 권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격적인 활동을 했다. 특히 67년에 텐조사지키라는 극단을 만들어 소극장운동을 주도하며 일본 연극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일관되게 상식을 전복하며 무료한 일상을 거듭하는 소시민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40년쯤 전에 나왔던 책을 원제 그대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출판사는 저자인 데라야마를 ‘천재 예술가’ 운운하며 좀 요란하게 선전한다.

하지만 책을 펴 들면 단박에 그런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좀 추켜세우자면 일탈과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 특히 도전하는 모든 청년을 위한 ‘복음서’이다. 일본 실험 연극과 영화계를 군림했던 데라야마의 글은 자신의 인생처럼 기성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과 도발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수필집이면서 역설적이면서도 멋지게 세상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일종의 처세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은근히 가출을 부추기고 자살을 미화하며 위태로운 선에 육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위트가 넘치기 때문이다. 무조건 세상을 거부하고 기성을 타파하라는 거친 주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편에 감춰진 인간적인 면을 부드럽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불완전한 시체로 태어나 평생에 걸쳐 완전한 시체가 된다’며 시종일관 세상을 데카당스하게 흘겨보지만 신주쿠의 터키탕에서 소외의 흔적을, ‘아내가 만들어주는 카레라이스가 무엇보다도 행복하다’는 샐러리맨에게서 행복의 비극을 감지한다.

젊은이들에게 그는 폼만 재는 ‘플레이보이’가 되지 말고 ‘부레이(無禮)보이’가 되라고 한다. 청년들이 풍속의 산물로 전락하거나 유행의 노예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말썽은 약간 피우더라도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한다. 부레이보이 되기 매뉴얼도 있다. ‘사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라.

표준말은 정치적 대화나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에게 적당한 말일 뿐, 인생을 논하기에는 부적절한 언어다. 시골 출신이 아니라면 일부러 촌놈으로 위장하라. 댄스 파티에 가서도 춤을 추지 말고, 아가씨들의 로맨티시즘을 자극하는 검은 안경은 절대로 쓰지 마라. 그리고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라.’

데라야마는 육체 예찬론자다. ‘소박하고 가장 인간적이었던 육체의 시대는 어느새 병든 지혜의 시대로 변해버렸다’고 믿는 그의 육체 찬가는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 구기(球技)의 우열을 공의 크기로 비교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야구보다 축구가 더 좋은 건 축구 쪽이 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야구란 안타를 쳐내고 기껏 집(홈)으로 돌아오는 경기이지만 축구는 11세기 중반 덴마크의 지배를 받던 영국인들이 뒷골목에 뒹굴던 덴마크 병사의 두개골을 발로 찬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노래 한 자락에 시름을 달랠 수 있는 유행가형 인간이야말로 정말 강한 존재’라거나, ‘정의란 낙관적인 정치용어’일 뿐이라는 이야기들을 거침 없이, 그럴 듯하게 쏟아내 놓는다. 자신이 원작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던 여러 연극과 영화에서처럼 데라야마는 신나게, 자유롭게, 패기 있게, 누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창의롭게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있다.

데라야마의 정신은 그도 인용하고 있듯이 앙드레 지드가 잠언서 ‘지상의 양식’에서 1차 대전 후 절망에 몸부림치던 유럽 청년에게 던져준 삶의 지침에 견줄만하다. ‘나타나엘이여, 이제는 나의 책을 던져 버려라. 거기서 너 자신을 해방시켜라. 나를 떠나라. 그래서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존재를 너 스스로 창조하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無禮보이가 되려면

사투리를 드러내라

댄스파티서 춤추지 마라

검은 안경은 쓰지 마라

돈 없다는 말 반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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