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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죽음을 초월한 사랑… 피에르 샤랴스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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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죽음을 초월한 사랑… 피에르 샤랴스 '19초'

입력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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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샤랴스(60)의 장편 ‘19초’는 테러의 폭력성, 인간의 영혼과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25년을 함께 지낸 중년의 연인 가브리엘과 상드린은 결별을 예감하고 있다. 식고 숙은 열정과 관심…,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묘한 약속을 한다. 여자는 열차에 타고 남자는 역에서 기다려, 늘 이용하던 위치인 열차의 세 번째 칸 마지막 출입구 앞에서 만나자는 것. 물론 두 사람의 판단은 자유다. 만남의 성사는 애정의 재확인이며, 불발은 결별이다.

남자는 역에 나가고, 여자도 열차를 탄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 불안하고, 약속에 충실한 자신이 수치스러워 갈등을 거듭한다. “그녀는 가브리엘의 모습을 훔쳐보기 위해 두 번째 열차 칸에 탔다. 기다림의 모습, 혹은 희망의 모습을 훔쳐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터무니없는 욕망에 절대 무너지지 말았어야 했다.”(32쪽)

오후 5시47분. 열차는 역에 들어선다. 두 사람은 언뜻 시선이 스치고, 여자는 주춤한다. 찜찜한 굴욕감과 약간의 허세…. 남자는 여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열차는 여자를 태운 채 출발한다.

여자는 이내 후회한다. “이제야 상드린은 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처음 만났던 때의 마음이다. 그들은 용서할 것도 용서를 구할 것도 없다.

단지 다시 만나기만 하면 된다.… 상드린은 진정한 미소가 몸 속으로 퍼지는 걸 느낀다.”(113쪽) 하지만 그로부터 19초 후, 테러범이 두고 내린 폭발물이 터져 상드린을 포함한 5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친다.

소설은 3부로 나뉜다. 열정의 회복을 기약했던 열차노선 이름 ‘제우스’가 1부이고, 사건 직후 숨져가는 희생자들의 내면과 테러범의 이야기인 ‘스틱스’(지옥의 경계를 흐르는 강)가 2부, 여자의 사망과 사랑의 종말을 수긍하지 못하는 남자의 갈등과 그의 어이없는 폭력을 그린 ‘하데스’(저승세계)가 3부다.

소설의 약 70%를 차지하는 1부는 19초, 18초, 17초…의 장으로 구분돼 시시각각 죽음의 시간으로 하강하는데, 거기서는 두 주인공의 내면 뿐 아니라 첫 사랑 남자를 만나러 가는 16살 소녀,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동성애자, 삶에 지친 중년의 여인, 잘 차려 입고 사창가를 찾아가는 중후한 노신사 등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삽입돼 영혼의 에피소드 같은 단면들을 찬찬히 보여준다.

희곡작가, 연극배우 이력의 이 작가는 1995년 7월 파리 열차 테러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고, 2003년 독자와 서점대표들이 주는 ‘프나크 상’을 수상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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