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無水不秀 水無山不淸, 曲曲山回轉 峯峯水抱流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 가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 돈다.)
중국 동남부의 낯선 명승지 무이산(武夷山).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 현지인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산과 물이 서로를 껴안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희롱한다. 그래서였을까, 산에 오르기 전 물을 먼저 찾았던 것은.
주자(1130~1200)가 그토록 좋아했다는 무이구곡계. 굵은 대나무 7~8개를 엮어 만든 뗏목 ‘주파이’에 몸을 싣고 과거로 출발한다. 뗏목 밑으로 파고 드는 옥빛 물이 발가락을 간지럼 태운다.
고개들 들었다. 암벽이다. 사자, 낙타, 코끼리, 거북이따위를 닮은 바위들이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듯 도열해 있다. 긴 장대 하나로 뗏목을 휘젓던 뱃사공의 입이 바빠진다. 도열한 바위들에 얽힌 전설이 거창하다.
유ㆍ불ㆍ도 삼교를 상징하는 품(品)자 모양의 삼교봉(三敎峰),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을 닮은 쌍유봉(雙乳峰) , 인간 세계 바깥의 무릉도원 도원동(桃源洞), 도끼로 깎은 듯한 천길 바위 절벽 쇄포암(灑布巖), 신선이 옷을 갈아 입는 곳 갱의대(更衣臺)….
하나 같이 길들여지지 않았다. 상처 나지 않았다. 인간 세계와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변한 것은 사람 뿐이다. 뗏목에 붙은 자동차 번호판(운항 면허판)이 과거와 현재, 시간의 혼돈을 일깨워 준다.
뱃사공이 마른 입을 적시는 순간 또 다시 숨이 탁 막힌다. 옥녀봉(玉女峰)이다. 무이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다. 광택 흐르는 절벽, 정상에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 마치 옥석을 조각한 모습이다. “절색의 소녀가 꽃을 꽂은 채 물가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설명이 그럴 듯 했다.
하지만 미녀의 전설은 슬프다. 웅장하고 힘 있는 암석, 대왕봉(大王峰)과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 병풍바위 철판장(鐵板障)이 이들의 만남을 막고 있다.
옥황상제의 시샘이었다나. 관세음보살은 이를 불쌍히 여겼다. 두 연인 중간께 45도 각도로 거울바위(면경대ㆍ面鏡臺)를 만들어 서로 얼굴만이라도 비춰볼 수 있는 자비를 베풀었다.
태초의 시간과 부딪치듯 흐르던 뗏목이 전설의 항로를 빠져 나온다. 일엽편주에 올라 절경속에서 노닐던 1시간 30분이었다.
아깝지만 감동의 반은 남겨 두어야 한다. 천유봉(天游峰)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무이산 제일의 경치며,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을 구경한 것이 아니다." 안내원의 말이 채 떨어지기 무섭다.
천유폭포가 호쾌한 굉음으로 맞는다. 정상에서 가파른 절벽 틈을 타고 떨어진다. 시원한 물과 눈부신 햇살이 함께 쏟아진다.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시원함은 거기까지다. 실같이 이어진 좁은 길에 가파른 계단이 기다린다. 딱 888개다. 간지럼 탔던 발이 긴장한다. 한 발 가면 바위가 솟고, 또 한 발 가면 숨이 솟는다. 만만치 않다. 대나무 양끝에 무거운 짐(정상에서 팔 물건)을 매달고 오르는 모녀의 발걸음을 뒤쫓는다. 땀이 흐른다. 절경도 흐른다.
눈을 들어 뒤돌아보니 굽이 굽이 풍경화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구곡의 옥빛 물길이 휘돌아 간다. 수많은 봉우리와, 시원한 물, 맑은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옛 사람의 노래처럼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 돈다. 감탄사가 흐르던 누군가의 입술에 시가 흐른다. “물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듣고 있던 누군가가 받는데, “그 곳엔 시인의 안주가 있다.”
정상에서 마시는 차 맛이 기막히다. 그 사이 바람은 또 하나의 전설을 배달하고 있다.
샤먼(중국)=김영환기자 kimyh@hk.co.kr
■ 여행수첩
무이산은 우롱차(烏龍茶)의 원산지다. 절경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대홍포(大紅袍)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6그루 뿐이다. 과거 황제의 진상품으로 연 생산량은 500g이다. 귀한 만큼 맛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꺾꽂이로 대홍포를 이어 받은 소홍포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농가 식당을 찾아 토속 음식을 맛 보는 것도 이색 추억이다. 그 곳 산채 요리가 별미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문시(廈門市)를 관광하는 것도 좋다. 온화한 아열대성 기후로 중국 본토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5대 경제 특구로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안한 도시다. 대만과 마주 보고 있는 해안선을 거닐어 보는 것도, 홍콩의 밤거리와 비교되는 야경에 파묻히는 것도 좋다.
섬 전체가 온통 유럽인들의 별장으로 뒤덮인 고랑서(鼓浪嶼)도 이색적이다. 뱃길로 10분 거리다. 당나라 시대 지어진 사찰 남보타사(南普陀寺)도 유명하다.
한국에서 무이산까지 직항편은 없다. 하문에서 갈아 타야 한다. 샤먼항공이 인천공항~하문 직항 노선을 주 3회(수ㆍ금ㆍ일요일) 운항하고 있다. 하문~무이산 국내선은 수시 운항한다. 스타피언투어119(02-725-1114, www.tour119.co.kr)에서 하문과 무이산을 연계한 3박 4일, 4박 5일의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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