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론으로 시작한 ‘노무현 구상’이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노 대통령 혼자서 ‘북 치고 장고 치는’식으로 밀어붙여온 연정발언은 이제 ‘2선 후퇴ㆍ임기 단축’이라는 대통령직을 담보로 하는 상황까지 왔다.
여야 모두 노 대통령의 다음 한 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충격 발언의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는 노 대통령의 궁극적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말 그만두고 싶은 심정 노 대통령은 연정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하기위해 대통령직을 담보로 걸었다고 했다. 7월6일 “대통령 권한의 절반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는 말은 지난달 25일에는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로 발전했다. 급기야 30일 우리당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선 “임기를 단축하거나 2선 후퇴를 할 수도 있다”며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제시했다.
지역구도 타파의 절실함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온 표현이라곤 하지만 대통령직을 내던질 수 있다는 말의 충격파는 크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취임한 지 3개월도 안된 2003년 5월에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한 적이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않겠다”는 발언도 지지율이 20%대에 불과한 등 돌린 민심에 대한 부담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났던 한 여권인사는 1일 “노 대통령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며 “연정론 등에 고집스레 매달리는 게 일종의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로선 노 대통령의 조기사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노 대통령도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여러 제안이 계속 야당과 여론의 벽에 막힐 경우 실제로 대통령직을 걸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관측이다.
선거구제 개편 통한 여당 영남 진출 ‘노무현 구상’을 진정성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 연장선상에서 정치권에서 예측하는 노 대통령의 최소 목표는 선거구제 개편이다. 한나라당이 거듭 거부했음에도 계속해 대연정론을 꺼내는 이면에는 선거구제 개편이란 노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소선거구제로는 고착화된 지역구도가 해소될 수 없다고 본다.
때문에 대안으로 선거구별로 2~4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전국이 아닌 시도별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31일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30% 지지를 받았는데 의석은 3% 밖에 안될 겁니다. 정치개혁의 핵심이 이런 데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한 데서 심중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연정론을 통해 지역구도 타파의 당위성을 부각한 뒤 이를 선거구제 협상으로 연결시킨다는 복안이라는 얘기다.
개헌포석 최종 지향점은 개헌과 정계개편일 것이란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개헌으로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출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권의 한 인사도 “노 대통령의 연정론은 개헌론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10월 재보선이 끝나면 우리당에서 조기 전당대회론이 일면서 당초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예상됐던 개헌논의가 앞당겨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내각제의 경우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권력 분점의도로 비치는 등 부정적 요소가 많아 가능성이 낮다”며 “여야가 공감하는 4년 중임제 대통령제 개헌논의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개헌논의 과정을 통해 정계개편을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정치구도를 만드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법 하다.
개혁세력 차기집권 ‘노무현 구상’이 선거구제 개편으로 그치든, 개헌까지 이어지든 이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개혁세력의 집권 연장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제안에 근본적 회의를 품는 것도, 우리당이 방법과 시기 등을 문제 삼으면서도 방향 만큼은 옳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누구보다 개혁적인 노 대통령이 수구세력의 집권을 용인하겠느냐”는 한 측근의 말은 ‘노무현 구상’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개혁세력이 정권만 잡았을 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선 여전히 소수이자 아웃사이더”라며 “노 대통령은 개혁세력이 진정한 집권세력으로 만들려는 힘든 일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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