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1년간 미국대학에서 연수하면서 피부로 느낀 점은 미국도로를 질주하는 일제차들이 예상 밖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물론 80년대 이후 일제차들이 미국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간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번 연수기간 실감한 것은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절반 이상이 일제차로 보일 정도로 도요타와 혼다 등의 차량이 미국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인들도 이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가 매출부진으로 어려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애국심 호소(Buy U.S.A.)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빅3’의 대표주자 GM은 최근 심각한 매출부진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GM은 1980~90년대 미국제조업의 경쟁력을 상징했으나 최근 실적악화로 신용평가사로부터 투기등급 판정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딜러점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고처리에 부심해온 빅3는 7월부터 자사 직원들에게만 적용해온 파격적인 할인율(최고 30%대)로 출혈판매에 나서고 있다.
미국차 추락에 쾌재를 불러야 할 도요타는 GM등이 바겐세일에 돌입하자마자 이들의 판촉을 돕는다며 렉서스와 캠리 등 인기차종 가격을 오히려 올리는 ‘여유’를 부렸다.
GM이 가쁜 숨을 내쉬는 노룡(老龍)으로 전락한데는 강성노조의 지나친 내몫찾기가 지적된다. GM노조는 종업원은 물론 퇴직자의 의료비용(헬스케어)과 연금비용까지 회사가 부담케 하는 강경투쟁에 주력해왔다. 그 결과 GM이 의료비용을 지원하는 전ㆍ현직 종업원 및 부양가족은 총 110만명에 이른다.
회사 곳간이 비어가다 보니 GM은 기존 모델을 땜질하거나, 겉모양만 변화를 주는 ‘화장발’ 신차를 내놓는데 급급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도요타나 혼다 딜러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과 일본업체의 명암이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업계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최근 사측이 임ㆍ단협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며 부분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8.48% 인상, 순이익의 30% 성과 배분 등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회사는 이를 다 수용할 경우 사실상 2조원 가량이 더 들어간다며 애를 태우고 있다.
물론 회사가 성과를 내는 한 노조가 적당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물가상승률 이상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회사경쟁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도요타는 지난 4년간 매년 1조엔(10조원) 이상 순익을 내고도 기본급을 동결해왔다.
노조측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신 회사로 하여금 투자여력을 만들어 국제경쟁에서 앞서가도록 기본급을 묶는데 동의했다. 회사는 최근 정년을 앞둔 사원들의 재고용 연한을 늘리는 등 일자리 안정으로 화답했다.
현대차는 세계 8위 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1인당 생산성, 수익성, 연구개발(R&D)비 등에선 도요타의 30~60%에 불과하다. 삼일우(三日雨)를 얻어 하늘로 치솟으려는 교룡(蛟龍) 같은 도요타도 무분규와 노사 협조로 세계최고의 차를 만드는데 매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아직 ‘새끼 호랑이’에 불과하다.
도요타 등 선진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해 어느 때보다 노사화합이 절실한 시점이다. 현대차 노조가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할지는 자명하다.
산업부 부장대우 이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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