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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 형사모의재판' 한국일보 기자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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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 형사모의재판' 한국일보 기자 체험기

입력
200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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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재산 때문에 아내를 죽이라고 시켰을까요.”

“영화에서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이유로 살인하는 경우도 많아요.”

31일 오후 ‘국민참여 형사 모의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66호 대법정 옆 배심원실에서는 열띤 공방이 오갔다.

이날 모의재판은 법원행정처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2007년 시범 도입할 예정인 배심ㆍ참심 혼합형 재판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했다. 일반 시민이 배심원을 맡아 피고인의 유ㆍ무죄 여부와 형량까지 판단했다. 공식 배심원단 외에 한국일보를 포함한 법원 출입기자 9명으로 별도 배심원단도 꾸렸다.

모의재판 소재는 바람을 피운 아내를 살해하라고 지시한 혐의(살인 교사)로 기소된 명문대 출신 사업가 A씨에 관한 사건.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주최측이 행사 취지에 맞게 각색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른 A씨의 조카 B씨의 진술 외에 A씨가 살인을 지시했다는 물증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A씨 회사 지분의 60%를 갖고 있어 아내가 죽으면 A씨가 회사 경영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 ▦아내와 골프코치의 불륜 등으로 그동안 가정 불화를 겪어온 점 등이 복선으로 설정됐다. 반면에 ▦A씨가 경찰 조사에서는 혐의를 시인했다가 검찰에서 번복하고 ▦A씨 집 가정부가 B씨도 A씨의 아내를 좋아한 것 같다고 진술하는 등 곳곳에 ‘암초’도 널려 있었다.

“B씨가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A씨에게 덮어 씌우는 건 아닐까요.” “나중에 번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시인합니까.” 주최측의 ‘예상’대로 배심원단이 하나의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제법 많은 재판을 지켜본 기자들이었지만 직접 배심원의 위치에서 판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직접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하면 조직폭력배 두목 등과 같이 범죄 뒤에서 지시한 사람은 어떻게 처벌한다는 말입니까.” 현행 형사사법 정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5시간의 검찰ㆍ변호인 공방에 이어 2시간여에 걸친 배심원단 자체 토론을 통해서야 겨우 의견이 모아졌다. 기자들의 결론은 무죄. “A씨가 살인을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유죄로 인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반 시민 배심원단은 이 같은 법 원칙에 낯설은 탓인지 결론을 달리 했다. 8:1로 유죄 의견이 많았다. 새로 마련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결론을 참고해 최종 판결을 내리도록 돼 있어 관심은 재판장에게 쏠렸다. 재판장은 기자단의 판단과 같은 취지로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모의재판이었으나 순간 검찰과 변호인단의 희비는 엇갈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기존 재판에서 볼 수 없었던 갖가지 풍경이 연출됐다. 검찰과 변호인은 판사보다 배심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검찰 구형은 통상 1분이 채 안 걸리지만 이날 검찰은 무려 40분 동안 배심원들에게 유죄 취지를 설명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유도신문을 하려고 하면 벌떡 일어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기도 했다.

“유죄가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해야 합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은 물론, 다른 배심원과도 의견을 나눠서는 안 됩니다”라는 등 재판장은 배심원단에 수시로 주의사항을 일러주기도 했다.

배심원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대학 연극동아리 회원들이 맡은 피고인들과 증인들이 눈물을 흘릴 때는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한 시민 배심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만큼 유ㆍ무죄를 판단하는 데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사개추위 관계자는 “배심원단의 의견이 다르긴 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며 “남은 기간 동안 예상되는 문제점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모의재판은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도 방청석에서 지켜봤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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