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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9·11 치유법은 화해 '랜드 오브 플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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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9·11 치유법은 화해 '랜드 오브 플렌티'

입력
200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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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랜드 오브 플렌티’는 9ㆍ11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처럼 신랄한 풍자를 드러내지도 않고,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와 같이 우회적인 비판의 칼날을 품고 있지도 않다. 감독은 요란스럽거나 날카롭지 않은, 그러나 특유의 정제된 연출력으로 차분하게 가슴을 울리며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테러로부터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과대 망상가 폴은 중동출신 이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휴대폰 벨소리까지 미국 국가를 사용할 정도로 열렬한 애국심을 나타내지만, 알고 보면 그는 미국사회의 희생양이자 밑바닥 인생에 불과하다.

특공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탓에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변변치 못한 살림살이에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나라 밖 세력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그릇된 피해의식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폴의 모습은 9ㆍ11이후 미국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대한 감독의 은유다.

멀리 이스라엘에서 삼촌 폴을 찾아온 라나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일하며 ‘잘못된 처방’에 의해 덧난 폴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간다.

폴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중동인이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후 두 사람은 길을 떠난다. 테러용의자 살해의 배후를 밝히려는 폴과 가족에게 시신을 전하려는 라나의 목적은 엇갈리지만,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둘은 국가와 미디어에 의해 가려진 진실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증오가 아닌 화해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기나긴 여정을 빌러 삶의 심연을 탐구해왔던 벤더스 감독의 연출력이 아직 건재함을 증명한다. 나지막이 잠언을 읊조리듯 호흡은 느리지만 서서히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출법도 여전하다. 디지털 카메라로 단 3주만에 촬영을 마쳤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영상도 매끄럽다. 15일 개봉.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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