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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Green 보트 2005' 결산 대담/ 바다 위, 韓·日 '우정의 미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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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Green 보트 2005' 결산 대담/ 바다 위, 韓·日 '우정의 미래'를 보았다

입력
2005.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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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ㆍ종전60년을 기념하는 ‘Peace & Green Boat 2005’가 보름간의 항해 끝에 27일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후지마루(富士丸)호를 타고 한ㆍ중ㆍ일 3개국을 순회하며 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기약한 행사를 마치며 공동주최자인 한국의 최 열 환경재단 상임이사와 일본의 요시오카 다츠야(吉岡達也)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선상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양국 시민이 역사현장과 환경현장을 체험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최 열=행사를 준비하던 올 3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감정이 극에 달했습니다. 사실 행사가 제대로 추진될 지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또 항해기간 동안 한ㆍ일 양국 참가자들이 이들 문제에 대한 의견차로 갈등을 빚지 않을까도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측 참가자들은 문제의 원인이 모두 일본측에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국의 양식있는 국민들과 일본의 양식있는 국민들은 생각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요시오카=그렇습니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시민 양측이 구체적인 공동 작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업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한ㆍ일간의 언어적인 장벽을 비롯해 문화장벽 등 많은 입장차가 있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실감했습니다.

최 열=첫날 도쿄를 출발, 부산으로 향하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만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젊은이들이 보다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한ㆍ일간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요시오카=대찬성입니다. 배는 국경을 넘은 제3의 장소입니다. 바로 한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또 ‘지구 시민’이라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면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것입니다. 중요한 일은 과거를 잊자는 것이 아니라 속박을 풀고 새로운 미래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최 열=8월15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기념식과 합동 공연을 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일본 옷을 입고 그것도 광복절에 민주공원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도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고 봅니다.

요시오카=역사적으로 가장 민감한 날인 광복절에 부산 시민들이 저희를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솔직히 부산 시민들이 저희를 냉대하고 내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도 했어요.

또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저희는 헌법9조 수호에 대한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한국분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습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동참해주신 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최 열=중국 단둥의 섬유공장에 갔을 때 공장측은 이황화탄소나 황화수소가 배출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또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대 운동 단체를 방문했을 때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요시오카=행사를 통해 현장체험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행사를 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상상력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역지사지’입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일본인 할아버지는 “너희들과 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을 듣고 ‘피스 앤 그린 보트’가 지향하는 목표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공통의 이해를 넓혀 한국과 일본이 한 가족이 되고 세계의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겠습니다.

최 열=선상 프로그램도 유익했습니다. 영화 상영을 통해 과거사를 되짚어봤지요. 장사익, 안치환씨의 공연도 모두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 노래를 가르치고, 일본 사람들은 한국노래를 배우고…. 이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요.

요시오카=이번에 7개 핵보유국에서 반핵운동을 하는 젊은이들도 함께 배에 올라 한ㆍ일 시민들과 반핵 평화운동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내년에는 중국 시민들도 함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아의 화합과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배를 다시 띄우렵니다.

정리=송두영기자 dysong@hk.co.kr

■ 흉보다가 한 수 배우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머리카락 허연 어른에게 담뱃불을 빌려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이다. 그런데 내 고향 경상도 북부 사람들에게는 좀 유난스럽다 싶은 예의범절이 있었다.

식사할 때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중의 하나다. 어린 시절, 무심코 밥그릇을 손에 들고 밥을 먹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고는 했다. 어른들은 천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밥을 먹는다고 했다.

15일 동안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고 의논하는 ‘피스 앤 그린 보트’를 탔다. 300여명의 일본인들과 보름 가까이 함께 생활하고 온 셈이다. 일본인들, 우리와 많이 달랐다. 머리의 피도 안 마른 여대생이 담배를 물고는, 머리카락이 허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를 빌려주었다. 봉변인가? 봉변 아니었다. 그 여대생은, 부자지간에도 맞담배질을 예사로 하는 곳에서 온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은 꼭 밥공기를 든 채 밥을 먹는다. 일본인들에게, 밥그릇 혹은 밥공기를 바닥에 놓은 채로 밥을 먹는 것은 소나 개 같은 짐승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밥공기를 들고 먹어야 한다. 천한 사람들인가?

나는 우리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물었다. 일본인들은 저희들끼리 모이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 일본인은 옳고 한국인은 그른가? 이 양자 사이에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일은 어떻게 서로 다른가?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 이것이 평화의 길이 아닐 것인가? 차이점을 찾아내는 일, 이것이 갈등의 길이 아닐 것인가?

범위를 넓혀 보아도 좋다. 연필 깎는 것을 자세히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연필을 손에 쥔 채 칼을 움직인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칼을 쥔 채 연필을 움직인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옳고 미국인은 그른가? 그르다고 여긴다면 그들을 비난해야 하는가? ‘연필을 깎는다’는 공통점에서 시작하면 안 되는가?

한국의 톱과 일본의 톱은 앞으로 당길 때 나무가 썰리도록 되어 있다. 뒤로 미는 행위는 당기기 위한 노동일뿐이다. 하지만 미국의 톱은 반대로 되어 있다. 미는 순간 나무가 썰리도록 되어 있다. 앞으로 당기는 행위는 밀기 위한 노동일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미국 톱을 쓸 때마다 애를 먹는다. 아시아 톱은 옳고 미국 톱은 그른가? ‘나무를 썬다’는 공통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평화의 길이 아닐 것인가?

계란에는 뭉툭한 쪽과 뾰족한 쪽이 있다. 어느 쪽을 깨고 먹어야 하는가? 뭉툭한 쪽을 깨고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반대쪽을 깨고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희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바탕 전쟁까지 벌였으니 이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小人國) 사람들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차이를 인정하는데 관대했던가? 아니다. 식당의 테이블에는 좌석이 6개씩 있었다. 나는 식사 중 맥주를 마실 경우 혼자서만 마실 수 없어서 함께 앉은 사람들에게도 작은 맥주병을 하나씩 돌리게 했다. 한 병 값은 우리 돈으로 약 4,000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본인들과 동석해서 저녁을 먹다 보니, 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내가 산 맥주를 얻어 마시기도 한 일본인 변호사가 달랑 맥주 한 병을 주문, 내 앞에서 홀로 마시는 것이었다. 내 낯이 다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차이에 대한 나의 관대함은, 한국인끼리 모인 곳에서 그 변호사를 흉보는 과정에서 얻은 결론이다. 흉보다가 한 수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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