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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국민은 어리석은 백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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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국민은 어리석은 백성인가

입력
2005.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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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골로 만(Golo Mann)은 역사 속 개인과 국가가 직면하는 삶의 이슈는 늘 구체적인데 반해, 정치의 이슈는 너무나 흔히 추상적이고 허황되거나 심지어 미친(mad)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가 토마스 만의 아들인 이 빼어난 역사가는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때로 무지와 오산에 좌우되는 연유도 이런 정치의 속성 탓으로 보았다. 역사를 흔한 선악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정치가 지혜로웠는지를 기준 삼은 안목이 돋보인다.

서론이 거창하지만, 그의 역사를 보는 눈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하는 데도 쓸모 있을 듯 하다. 민생 문제가 급하니 정치 이슈는 그만 떠들라는 상투적 불평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와 사회가 떠드는 이슈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허황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의 장래가 무지와 오산에 좌우되는 일은 없을 터이다.

●추상적이고 허황된 정치 이슈

민족 운명의 변전을 상징하는 광복절에 우리는 삶과 생존의 이슈를 논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 청산과 과거사 정리를 새삼 이슈로 삼았다. 그게 허황된 것일 수는 없지만, 구체적 삶의 이슈이기에는 역시 추상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21세기를 개척하는 전략적 선택, 이를테면 동북아 균형자론을 뜨겁게 논란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장엄한 결의는 어디로 갔나 싶다.

이어진 정치 이슈는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대연정 제안이다. 경술 국치의 역사적 실패도 사회 분열 때문이란 자못 대견한 역사 해석과 함께, 그 오랜 분열을 극복하는 데 동참하지 않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란 경고가 엄중했다.

대연정이나 선거제도 개편, 나아가 그 제안 뒤에 숨어 있다는 내각제 구상 등이 뿌리깊은 분열을 치유할 비책이라는 데 선뜻 공감하지 않는 국민에게는 곧장 어리석은 백성이란 낙인을 찍었다.

백성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데는 몇 백년 걸리기에 역사 속에 구현되는 민심을 좇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21세기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려는 바른 소리로 들린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고 국민은 아직 독재시대 문화에 머물러 있다고 한탄한 홍보수석의 말은 21세기 용비어천가로 들린다. 국민은 대통령을 비방할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폄하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물며 그 수하가 국민을 모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라 할만 하다.

대통령과 주변의 부덕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동북아 균형자론 등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국내정치 이슈로 화두를 옮긴 것은 정치적 판단으로 보더라도, 그 동북아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된 산동반도의 중ㆍ러 합동군사훈련에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부터 기이하다. 복잡한 외교적 고려를 한다고 하겠지만, 추상적 구호를 외치는 데는 용감할 뿐 구체적 현실대응에는 애매모호한 면모가 새삼 두드러진다.

중국과 러시아의 첫 합동상륙훈련이 북한의 변란을 가상한 것이라는 분석은 편향되고 성급하다. 그러나 국민이 어찌 생각하든 괘념치 않는 정부의 모습은 역사를 국민에게 가르치려는 오만한 사명감에 비해 너무 왜소하게 비친다.

●과거에서 배우려면 정직해야

문제는 역시 정치와 사회의 이슈가 늘 현실 아닌 과거를 맴도는 데 있다. 특히 그 과거를 반추하는 데도 정직하지 않은 것이 분열과 갈등을 지속하는 근본 원인이다.

이를테면 그토록 논란하던 한일협정 체결과 베트남 파병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나오자, 당시의 나라 형편과 전략적 여건 등을 외면한 잘못은 반성하지 않은 채 다시 사소한 시비에 매달리는 태도다. 이런 인식과 자세로는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내세워도 과거에서 배울 게 없고, 현실의 과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현실의 실패를 숨기는 정치의 이기적 목적에 이바지할 뿐, 미래로 향한 국가적 행보를 스스로 얽매기 십상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라고 본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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