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외국과의 관계에서 피해의식이 있으며 희생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 사는 어느 독일 학자의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제 식민지 경험과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외국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이성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젠가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우리 선수의 반칙 판정을 유도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피해의식이 경제적으로는 외국 투자가에 대한 경계감으로 표출된다. 소버린이라는 투자회사가 국내 대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적이 있었는데 평소 재벌에 대해 못마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경영권이 외국에 넘어가는 것을 걱정하더니, 주식을 판 후에는 외국회사가 이익을 거둔 것에 대해 거센 비난을 했다.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일본한테는 기술로 밀리고 중국한테는 노동력에 치인다는 ‘넛 크래커’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외국에 피해의식 지나쳐
정말 우리는 늘 피해만 입은 것일까? 부끄러운 옛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조공(朝貢) 사절단 파견에도 상당한 실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사신이 가지고 간 품목에 비해 중국의 답례품이 많은 것이 보통이며 사절단이 평안도 의주를 지나 국경인 압록강을 넘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석 달 간의 체류비용은 중국이 부담하는데 정부 관리, 군인, 기술자, 상인 등 각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200명에 가까운 사절단이 그 동안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무역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겉보기에는 황제 알현이라고 해서 우리가 굉장히 아래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리 면에서는 오히려 나았다는 얘기다.
우리가 만든 전자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우리 선박과 우리 항공사가 대륙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현재에도 외국에 대한 방어적인 생각은 여전하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에 있어서 실제 무역이나 투자효과를 많이 거둘 수 있는 나라보다 칠레나 싱가포르와 같이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 스위스 노르웨이와 같이 멀리 떨어진 나라를 상대로 선택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미군 장갑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맥도날드 등 미국 상표 불매운동을 하거나 일본의 역사 왜곡 사건이 불거졌을 때 학생들의 교류를 중단한 일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부산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된 국제노동기구(ILO) 총회가 국내 문제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불참하겠다고 하여 연기된 사건은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나 책임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랜 단일민족의 전통을 지닌 우리나라이지만 최근 아홉 쌍 중에 한 쌍의 비율로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도 35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와 더불어 사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1960년대 말 한국에 주재하러 온 외교관이 면세로 들여온 차를 중도에 팔아 이득을 남기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세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엄격한 규제를 하기를 원했지만 장관은 ‘외교관들이 선호하지 않는 힘든 한국 땅에 온 사람으로부터 그만한 혜택마저 빼앗겠다는 것은 짧은 생각’이라고 들어주지 않았다. 음미해 볼 만한 얘기다.
●우리에겐 생존의 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미국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일본도 다른 나라의 입장을 도외시하는 일방주의를 펼치고 있는데, 우리가 애써 남을 배려할 까닭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잘못이다.
한국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에 가까운 나라이며 미국이나 일본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외국과의 거래가 우리에게 그만큼 절실하고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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