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도전하십시오. 장애는 결코 벽이 될 수 없습니다.”
재미교포 이승복(40)씨는 세계적 명성의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전공의다. 하지만 이씨는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누빈다. 그는 미국 내에도 단 두 명뿐인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얻은 애칭이 ‘슈퍼맨 닥터 리’.‘사지마비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란 수식어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이미 뉴욕타임스를 비롯, AP통신, 폭스 TV 등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돼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가 국내 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장애극복 체험을 다룬 자서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황금나침반 발행) 출간에 맞춰 29일 고국을 찾았다.
여덟 살 때인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 때 촉망 받는 체조 선수였다. 고달프기만 했던 이민생활에 우연히 만난 체조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체조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집념어린 노력으로 마침내 전미 올림픽 상비군에 선발되며 꿈에 다가서는 듯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한 순간의 실수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중증장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분노로 주체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이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재활치료를 하며 관심을 갖게 된 의학 공부를 새로운 목표로 세우고 밤잠을 안 자며 노력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또 한 번 기적을 일궈냈다. 뉴욕대, 콜럼비아대를 거쳐 다트머스와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것이다.
“처음엔 모두들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고 걱정했지요. 하지만 저는 제 의지를 믿었습니다. 의사가 되는 꿈은 체조에서 이루지 못한 ‘제2의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도전이었으니까요.”
의사로서 그에게 장애는 오히려 절망이 아닌 축복이다. “환자들이 처음에는 휠체어를 탄 의사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똑같은 아픔을 이겨낸 저를 보며 속내를 털어놓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지요.”
조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 역시 그를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힘이다. 88서울올림픽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미국 국적조차 받지 않았던 그다. 이씨는 이민 1.5세대란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미국 땅을 밟을 때부터 한국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영어를 배우면서도 어릴 적 읽던 국어책을 몇 번이고 들춰가며 우리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그의 손에는 항상 두툼한 보호장갑이 끼워져 있다. 수동식 휠체어 바퀴를 굴리느라 손이 온통 굳은살 투성이기 때문이다. 이젠 전동 휠체어로 바꾸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지만, 헤어진 장갑과 상처 난 손은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잊지 않으려는 그의 다짐이다.
이씨는 2주 가량의 방한 기간에 초청 강연과 방송 출연 외에도 국립재활원을 방문해 장애인들을 위로하고 태릉선수촌에서는 체조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만남도 가질 예정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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