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한일협정 문서공개 직후 “종군위안부 등 반(反)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면서 과연 일본에 책임을 추궁하고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가 문제제기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의 성격이 짙다고 보면서도, 책임 추궁의 여지가 일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군대위안부,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고, 따라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책임 추궁 방식에 대해선 “국제기구 등을 통해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전후 배상은 완전 종료된 상태”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입장은 한국 정부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일본 외무성도 14일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위안부 문제도) 배상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해결됐지만 다만 고령자들의 현실적 구제를 위해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어 협력했다”고 밝혔다.
결국 문서공개, 후속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영산대 국제학부 최영호 교수는 “정부가 일본의 법적인 책임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는 의미를 가질 뿐”이라며 “우리가 이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2항을 보면, 양국은 “개인청구권에 관한 사항은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종군위안부, 사할린동포 문제도 개인청구권에 속한다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당시 협정에서 청구권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고 인권문제와 같은 개인의 기본권을 국가가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건국대 법학과 김창록 교수는 “한국 정부가 공식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추궁의 근거를 마련하고 미국 일본 등지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며 “청구권협정에서 위안부, 사할린동포 문제가 다뤄졌는지 여전히 불분명한 만큼 추가 협상 제기도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본이 추가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또 종군위안부나 징용 피해자들이 벌이는 소송에서도 일본 사법부가 기존의 ‘배상종료’ 입장을 바꿀 여지도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일본이 그럴수록 도의적 책임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며 국제사회의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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