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요체를 흔히 ‘적재적소(適材適所)’라 한다. 개인의 특기와 경험을 살려 가장 적합한 일을 맡긴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엔 인사의 원칙 역시 수정이 필요하다.
사람을 놓고 자리를 정하는 ‘적재적소’보다는 자리에 필요한 특정 인재를 찾아 나선다는 개념의 ‘적소적재(適所適材)’가 더 어울릴 듯싶다.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우수인재 찾기에 여념이 없는 현장의 기업가에게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지식과 정보기술의 시대에, 뛰어난 인재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모든 기업과 조직들은 어제의 방식에 잘 훈련된 과거형 인재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와 미래의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대안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할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길러낼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CEO들의 핵심 과제가 됐다. 20%의 직원이 80%의 생산성을 내고,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경영 경구가 등장할 정도다.
정부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간부문만큼이나 우수인재의 확보가 긴요하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과연 우리의 공무원들은 민간부문이나 선진국의 경쟁자들에 비해 우위를 갖고 있는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에 견줄만한 인재들이 우리 정부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가.
인재경영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 공공부문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 경쟁을 헤치고 나가는 민간부문에 비해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에 상대적으로 치열성이 덜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인사시스템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바늘구멍 같은 고시관문을 통해 채용 당시에는 최고 수준의 우수인재를 뽑은 정부의 경쟁력이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정부 인사는 연공서열적이다.
능력이나 실적보다는 근무경력위주의 평가와 승진심사의 틀을 아직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공무원 임용일이나 고시 기수에 의해 직급과 승진이 결정되는 인사시스템 속에서 조직의 다이내믹스는 활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경쟁력은 이제 생존의 문제다. 변화에 둔감한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공직사회 역시 생존을 위해선 마땅히 폐쇄성의 벽을 허물고 조직의 미래를 좌우할 인재경영에 뛰어들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민간부문은 훨씬 더 치열한 승자독식의 경쟁 환경에 내몰렸다. 정글에서 살아남은 기업과 개인만이 세금을 낼 수 있게 됐다.
이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에게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행정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능력이 탁월한 인재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해서 다른 나라 정부에 뒤지지 않는 효율성을 실현해 달라는 것은 타당한 요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공직인사에 있어 획기적 변화의 신호탄이 되리라 생각한다. 3급 국장 이상 간부들로 하여금 고시 계급장을 떼고 성과와 능력만으로 경쟁토록 하는 이 제도의 도입은 분명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정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발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여도와 상관없이 공무원에게 일정한 자리를 보장하던 인사에서, 새로 정의된 직무에 맞춰 적정인재를 찾아 배치하는 적소적재의 시대가 공직에도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오랜 관행과 틀을 바꾸는 일이라 난관도 있겠지만, 모쪼록 제도 도입이 원만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규·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보관, 전 한국IBM 인사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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