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입에 올릴 때면 찬사와 비판, 질타와 부러움이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처럼, 삼성 또는 이건희 회장을 평가하는 숱한 책도 대개는 두 부류이다. 외환위기의 간난을 이겨내고 한국 대표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의 저력과 오너 이건희의 재능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든가, 노조 탄압과 상속 문제, 폐쇄적이고 때로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기업문화를 가차 없이 몰아세우든가.
전방위 시사ㆍ인물평론가로 입지를 굳힌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건희 시대’라는 책을 냈다. 정치인이나 정치와 연관된 유명 인사들을 주로 비평해온 강 교수가 이건희에 주목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당위가 아닌 현실을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건희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두고 유력 언론의 홍보성 기사와 극단적인 비판만 존재하는 지금과 같은 풍토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경제권력 우위론, 삼성공화국론, 삼성의 이건희 1인 지배체제론 등에 근거해서 지금 한국은 ‘이건희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건희를 기존의 경영학 분석의 영역에만 남겨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단정하는 그는 그래서 그를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나아가 이건희 회장의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입체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서 강 교수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적어도 비판적인 집단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적지 않은 신뢰와 온정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의 글은 곳곳에서 경영자로서 이건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삼성이 이룩한,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이 기업의 성과를 폄하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삼성이 현재 맞닥뜨린 비판을 넘어 위상에 걸맞으면서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과 이건희에 쏟아지는 비판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는 선대 이병철 회장의 유언을 지키기라도 하듯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무노조 경영, 기업의 명망에 걸맞지 않은 상속을 둘러싼 잡음, 경영이나 조직의 폐쇄성, 지시와 명령의 관계가 지배하는 일방적인 관리형 시스템 등이다.
강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의 키워드는 ‘소통’과 ‘블루오션’이다. 기업 역시 다른 모든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구성원과 경쟁 조직 등의 경로에 의존해서 흥망하게 마련이고, 지금처럼 폐쇄적인 운영에서 벗어나 조직원들과 또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신사업 구상에서만 블루오션의 영역을 찾을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런 영역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삼성의 안전은 삼성인들만 지킬 수 있다는 발상을 재고’해야 ‘삼성이 잘 되는 것이 한국에 이롭다’는 생각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이미 정평이 난 자료수집능력을 십분 발휘해 갖은 매체에서 보도하고 비평한 이건희 관련 글들을 재구성하면서 이건희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김우중이 워크홀릭이라면 이건희는 생각중독증이라는 식으로 기업인들을 비교한다든가, 경로(經路)에 의존한 성과를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착각하는 청와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시사적인 감각 등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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