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것도 검토해보겠다’는 발언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당혹감에다 “당과 청와대가 괴리돼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아 당ㆍ청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여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속으로 폭발하기 직전이다. “아무 말 하고 싶지 않다”는 답으로 불편한 심정을 표출하는 의원들도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대통령의 발언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도 많았다. 김교흥 의원은 “진짜 통 모르겠다”며 “이런 문제를 대통령 혼자만의 고민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목희 의원도 “대통령의 소명의식은 알겠지만 그것이 국민에게 널리 이해돼야 하는 측면에서 부족하다”며 “지역구도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꼭 그 방법밖에 없나라는 생각도 있는 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 지도부가 잘 알아서 하겠지 뭐”(재선 의원) 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왔다.
당이 일방적으로 소외돼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광원 의원은 “여당이 청와대와 동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며 “연정 문제를 대통령 혼자 생각하신 것이라면 독단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고, 참모들과 협의했다면 국민정서를 파악 못한 불성실한 참모들의 과오”라고 비판했다.
김교흥 의원도 “뜬금없이 연정론을 던졌다가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상황까지 올 동안 당에 대한 의견수렴이 전혀 없었다”며 “여당의 존재는 과연 뭔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적극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불만을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문희상 의장은 이날 “망국적인 지역감정 타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과제”라며 “한나라당과 민노당, 민주당에게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정치협상을 공식 제안한다”고 밝혔다.
임채정 열린정책연구원장도 “현실 대통령의 표현이 ‘옳으냐, 그르냐’에서부터 ‘위헌이냐, 아니냐’까지 논란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대통령 발언을 지엽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고,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옹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발언의 충격과 그 동안 당내에 누적된 불만 때문에 의원들의 술렁임이 쉽게 가라앉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요 당직을 맞고 있는 한 재선의원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당장 집단행동이야 나오지 않겠지만 자칫 청와대와의 갈등이 재연될까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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