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비밀도청조직 미림팀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반쪽 짜리 수사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검찰은 23일 도청 행위자인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무리하면서 미림팀의 활동실태는 대부분 파악했다. 하지만 그 후론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정작 중요한 건 도청지시자가 누구인지, 도청자료를 누가 활용했는지 인데 관련자들이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미림팀 배후 규명의 열쇠를 쥔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이 예상보다 강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대공정책실장 시절인 1994년 6월 미림팀 재건을 지시한 것으로 국정원 발표에서 지목된 오씨는 미림팀 보고서를 당시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씨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림팀과 정권 수뇌부 사이에 자리했던 오씨의 도움 없이는 수사가 ‘윗선’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오씨는 24일 검찰 조사에서 미림팀 재건을 지시한 혐의조차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조사 직후 김현철씨 보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림팀 재건 당시 오씨의 상관이었던 황창평 전 안기부 1차장도 25일 검찰에 나왔으나 “미림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다음주엔 미림팀 활동 시기(94년 6월~97년 11월)에 안기부장으로 재임했던 김덕(93년 2월~94년 12월)씨와 권영해(94년 12월~98년 3월)씨가 소환될 예정이다. 오씨가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입을 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림팀 도청 행위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공소시효(법개정 이전 행위이므로 5년)가 이미 지난 상태여서 관련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도청 지시자도 마찬가지다. 검찰로선 오씨를 추궁할 카드가 없는 셈이다. 조직 내의 문제에 관해선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정보기관원의 속성도 수사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검찰은 공식 브리핑에선 “수사는 당사자가 부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사팀 관계자는 “이러다가 아무 것도 안 나오면 비난을 어떻게 감수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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