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청을 둘러싼 진실 게임이 25일 국회 정보위를 계기로 한 고비를 넘어선 양상이다. 전·현 국정원간 갈등으로까지 번졌던 양측의 논리 대립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불법감청이 이뤄진 흔적이 있다”는 식으로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다.
국회 정보위에서 이루어진 의원들의 문제 제기와 국정원의 답변, 그래도 남는 의문점을 Q&A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Q. DJ정부 시절 도청은 있었나, 없었나.
A. 있었다. 지난 5일 “DJ정부 시절 도청이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근거를 못 대던 국정원은 25일 정보위에서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CAS)를 사용하기 위해 2001년3월 작성된 신청서 5매와 운용 지침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감청 장비를 사용한 흔적은 있는데 영장 청구 등 합법 절차를 밟은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영장없는 감청, 곧 불법 도청이란 논리다.
Q. 어느 선에서 지시하고 누가 실행한 것인가.
A. 국정원은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실무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전 과학보안국 관계자들도 “과학보안국 규모가 워낙 커서 보안이 지켜지기 어렵다”며 조직적 도청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국정원 답변을 종합해보면, 대공정책실 등 실무선에서 도청 장비를 빌려가 도청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상명하복의 국정원에서 도청 사실을 원장 등 윗선이 과연 몰랐겠느냐는 반박도 나온다.
Q. 휴대폰 도청은 어떻게 했나.
A. 불법 도청은 R2와 CAS가 모두 활용됐다. R2는 당초 유선 대 무선 감청에 사용하는 장비였지만 디지털 휴대폰에 대한 불법도청에도 일부 활용했다는 게 국정원 설명이다.
통신회사의 유선중계구간 회선에 장비를 연결해 이뤄졌다.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감청 영장을 발부 받은 뒤 전화번호를 임의로 입력하거나 변경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특히 “당시 장비를 사용한 직원들도 일부 임의로 불법도청을 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R2를 이용한 ‘번호 끼워넣기 또는 바꾸치기’도청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CAS는 차량에 탑재해 휴대폰 사용자의 200m내까지 접근해 도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용해 보니 통화 품질이 형편없었고 약간의 장애물만 있어도 도청이 안됐다. “실패작이었다”는 게 당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CAS는 1999년12월부터 2000년9월까지 사용됐다는 5일 발표와 달리 2001년 4월까지 사용됐음이 드러났다. 두 장비는 2002년 4월 인천의 제철회사 용광로에서 사라졌다.
Q. 누구를 대상으로 했나. 정치인은 포함됐나.
A. 대공, 테러, 마약 관련 사범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휴대폰 도청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인 포함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고 관련자들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R2 운영 직원들이 대공안보 목적과 관계없는 불법도청을 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혀 여지를 두고 있다.
2002년 대선직전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도청 자료라며 폭로한 자료가 구체적이란 점도 도청이 정치인까지 미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키운다.
Q. 일부 도청이 이루어졌는데도 DJ정부 시절 국정원장들이 반발한 이유는.
A. 이들이 반발한 핵심적 대목은 현 국정원이 DJ정부 시절 도청이 조직적으로 있었던 것처럼 발표했다는 점이다. 과학보안국 차원이나 그 윗선에서의 도청은 없었다는 것이다.
현 국정원이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데 대한 역공의 성격도 있다. 자신들은 일부 관행적 불법도청을 사실도 전혀 몰랐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중도 있는 듯 하다.
Q. 충분한 조사도 없이 국정원이 발표한 이유는.
A. 국정원으로서는 X파일 파문이 나라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과거를 털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계속 숨겼다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도청 실무자를 통해 “했다”는 답은 나왔지만 그것을 증명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장비와 서류 등이 폐기된 상태에서 관련자 증언만으로 도청을 증명해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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