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도청 여부를 놓고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다. 휴대폰 도청에 관한 국가정보원의 진실고백에도 불구하고 그 실태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에 나선 검찰이 풀어야 할 의문점은 크게 네 가지다.
합법감청이냐 불법도청이냐
휴대폰 감청을 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핵심은 허가 받지 않은 감청, 즉 도청이 있었는지 여부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감청영장이나 허가서가 없었으니 결국 불법도청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반면 전직 국정원장들은 “시간이 지나 (감청영장 등) 관련 자료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고 반론을 폈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23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과거 국정원의 불법도청을 시인한 듯한 발언을 했다가 24일 “진의가 와전됐다”고 해명해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청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 감청장비 운용과정에 범죄혐의와 상관없는 번호를 끼워넣거나, 국가안보 관련 정보수집을 빙자해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뒤 광범위하게 감청하는 식이다. 검찰도 이 같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도ㆍ감청 대상은 누구였나
국정원은 휴대폰 감청이 주로 외사, 방첩 분야에 한정됐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굳이 불법(도청)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 일각에선 DJ정부 시절 해직된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동향 감시에 활용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2002년 9~12월 휴대폰 도청 내용이라며 폭로한 문건에는 정치인, 기자, 청와대 인사의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정원은 정보요원이 대면접촉을 통해 얻은 정보라고 일축했지만, 당사자 대부분은 자신의 통화내용과 일치한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이 연루된 진승현 게이트를 수사하던 2000년 무렵 수사팀에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엿듣기의 대상과 목적은 감청이냐 도청이냐를 판가름하는 핵심 대목이다. 따라서 휴대폰 도ㆍ감청이 정치사찰에 이용됐는지 규명해야 한다.
감청장비 정말 폐기했나
국정원은 2002년 3월 휴대폰 감청장비를 분해한 뒤 수도권 모 제강회사 용광로에 넣어 전량 폐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유출 위험을 무릅쓰고 외부 회사에 장비 폐기를 맡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당 제강회사도 “이물질(도청장비)을 넣으면 기준함량 미달로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전기로에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은 “폐기 당시 감청장비 2~3개를 분실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유선전화 도청은 없었나
유선전화 감청은 국정원이 유선통신업체에 영장을 제시하면 업체에서 해당 전화번호 회선을 국정원 쪽으로 연결시켜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재까지는 통신업체의 도움 없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정원이 자체 유선전화 감청장비로 영장에 없는 전화번호를 엿들었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검찰이 국정원 압수수색 때 유선감청 장비를 압수한 것도 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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