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 누구나 가족에게 줄 몇 가지 선물을 사온다.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해외에 나갔다 오게 되면 이 ‘길 위의 선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딱 두 가지 물건을 산다. 하나는 큰집 작은집 합쳐 온 집안의 아이들에게 나눠줄 문구세트이고, 또 하나는 일흔이 훨씬 넘은 어머니에서부터 올해 대학에 막 들어간 조카아이까지 온 집안의 여자들에게 하나씩 줄 어느 화장품 회사의 같은 색상번호 립스틱 열 다섯 개이다.
지난번 여행 때 누군가 똑 같은 것을 왜 그렇게 많이 사느냐고 물어서 농담처럼 “내가 관리해야 하는 입술은 하나지만 신경 써야 할 입술은 부지기수여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선물로 립스틱을 살 때마다 아주 예전에 어머니가 쓰던 립스틱 생각이 난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엔 색깔이 연두색이었는데, 볼에 살짝 묻히거나 입술에 살짝 바르기만 하면 대번에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빨간색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립스틱이었다. 그래서 한번에 바르는 양도 아주 작아서, 어머니는 그 립스틱 하나를 십년도 넘게 썼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연두색 ‘크레용 립스틱’ 나오는지 모르겠다.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