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이저에 밀려 사라질 줄 알았던 잉크젯 프린터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업체간 기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 확산으로 사진 인쇄 수요가 늘어나고, 무미건조한 흑백 대신 컬러 출력이 보편화하자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컬러 구현이 쉬운 잉크젯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잉크젯
HP는 23일 싱가포르에서 컬러 잉크를 이용한 ‘확장형 프린팅 기술’(SPT)과 이를 응용한 첨단 잉크젯 프린터(HP 포토스마트 8230) 및 복합기(HP 포토스마트 3000),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업용 컬러 잉크젯 프린터 등을 선보였다. SPT란, 출력 속도를 종전보다 4배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장당 출력 비용은 최대 30%까지 줄인 잉크젯 기술이다. HP측은 “잉크가 뿜어져 나오는 구멍(노즐)의 수를 기존의 2배인 3,900여개로 늘려 헤드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출력되는 문자와 색점의 양이 대폭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4x6 사이즈 사진의 경우 14초 만에, 일반 컬러 문서는 레이저보다 2배 이상 빨리 출력할 수 있다고 HP측은 밝혔다.
HP는 이와 함께 사진의 색감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비베라(Vivera) 잉크와 ‘어드밴스드 포토 용지’도 개발했다. 보급형 비베라 잉크는 개당 가격도 2만원 미만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HP의 크리스토퍼 모건 부사장은 “HP는 세계 프린터 시장 점유율 1위의 기업답게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손쉽게 첨단 프린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HP는 이밖에 사진 한 장을 10초 만에 읽어들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캐너(스캔젯 4890)도 선보였다.
연구개발 투자
HP가 이들 첨단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5년간 투자한 금액은 무려 14억 달러(1조4,000억원)에 이른다. . 업계 관계자는 “프린터 업계에는 엡손과 캐논, 삼성전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며 “이들은 50만원대의 초저가 컬러 레이저 프린터와 10만~20만원대의 고성능 잉크젯 프린터를 속속 내놓고 있어 첨단 프린터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HP의 최대 경쟁자로는 일본의 엡손이 손꼽힌다. 이미지 전문기업을 표방하는 엡손은 나노 테크놀러지를 응용한 첨단 ‘파워맥스’ 잉크와 초정밀 ‘마이크로피에조 잉크젯 헤드’, 기존의 필름 사진보다 더 뛰어난 색감을 자랑하는 ‘울트라크롬 K3’ 8색 잉크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에 투자한 비용은 890억엔(9,000억원)에 이르며, 최근 190억원을 투자해 2006년 완공을 목표로 나가노현 마츠모토 본사에 연구개발센터도 추가로 건립하고 있다.
엡손은 지난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HP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HP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특히 전문가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엡손의 히라노 세이이치 전무이사는 “기술면에서는 엡손이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5년 내에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P를 추월하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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