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해 바다 가까운 산촌에 살다가 어른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다음 참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산 것이 있다. 어느 날엔 분명 그런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서울살이 20여년이 넘는데도 아침노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해가 떠오를 때 온 바다와 온 하늘이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드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동이 트는 모습이지 아침노을이 아니다.
우리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밭으로 가신다. 여름 한낮엔 일을 할 수 없어 바람이 선선한 새벽에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 동안 어머니는 텃밭에 나가 일하는 틈틈이 아침을 짓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올 때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눈을 비비며 마당에 아침 멍석을 편다. 그때 산 너머 동쪽 하늘이 밝은 주황색으로 빛날 때가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몇 조각 역시 잘 물들여놓은 비단처럼 곱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저녁답엔 비가 올 테니 낮에 서둘러 강낭콩 걷어 들이고, 고추 펼쳐놓은 것도 일찍 걷어 들여라.” 그러면 틀림없었다. 지금 기억에도 아침노을은 언제나 비를 몰고 왔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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