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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골프와 반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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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골프와 반바지

입력
2005.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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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긴 바지 입고 골프를 쳐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 법이야?” 오랜만에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는 아직도 분을 삭히지 못해 씩씩 댔다. 경기 포천의 한 대중골프장에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골프장 직원이 다가와 반바지는 허용할 수 없다며 골프장에서 나오라고 한 것. 남자는 반바지 차림을 허용할 수 없다는 직원과 옥신각신 하던 이 친구는 골프장 매장에서 거금을 들여 긴 바지를 사 입고서야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회원제는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중골프장까지 원칙적으로 남자가 반바지를 입고 라운딩에 나서는 것을 금하고 있다.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신사의 운동인 만큼 털이 숭숭 난 다리를 들어낸 채 필드에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반바지를 허용하는 골프장도 몇몇 있지만 무릎까지 오는 긴 타이즈를 신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있어 진정한 반바지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운동엔 반바지가 제격이다. 여름엔 더욱 그렇다. 시원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축구 농구 육상 테니스 권투 등 대부분의 주요 종목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경기를 한다.

긴 바지를 입고 시합을 하는 종목은 땅 바닥에 몸을 날려야 하는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야구나 법도를 중시하는 태권도 등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골프는 유별나다. 골프는 부상의 위험이 별 없는 안전한 운동인데도 혹서기에도 다리에 쩍쩍 들어붙는 긴 바지를 입고 18홀을 돌아야 한다.

기자도 골프장에선 긴 바지를 꼭 입어야 한다는 부자연스러운 에티켓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터라 세계 100대 외국 명문 골프장의 복장규정을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페블 비치, 파인 허스트, 퍼시픽 듄즈, 베스 페이지… 미국 프로골프협회(PGA)의 메이저 대회가 열렸던 세계적인 대중골프장인데도 반바지 차림의 라운딩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골프장의 하의 복장규정(Dress Code)은 간단하다. 청바지를 입고 라운딩을 할 수 없으며 반바지를 입을 경우 버뮤다 쇼츠(Bermuda Shorts)라는 무릎이 보일 정도로 길이 짧고 품이 좁으며 혁대가 있는 그 흔한 반바지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외의 사실은 미국과 영국의 명문 회원제 골프장까지 반바지 라운딩을 허용하고 있는 점이었다. 골프전문 월간지 미국 골프메거진이 선정한 ‘2005년 세계 100대 골프코스’에서 1,2,3위를 차지한 미국의 파인밸리와 사이프러스 포인트, 2005년 브리티시오픈 개최지인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가 버뮤다 쇼츠를 권장하고 있었다. 4위에 오른 마스터스 개최지인 미국의 오거스타내셔널 정도만이 불허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내 골프장의 긴 바지 착용원칙은 세계적인 에티켓이라기보다 한국적인 로컬룰인 셈이다. 골프가 일제강점기에 도입되는 바람에 일본식 에티켓이 널리 퍼진데다 가장 값비싼 운동에 걸 맞는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작용한 것 같다. 사실 바지의 길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긴 바지 착용원칙으로 상징되는 경직되고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골프장 분위기가 골프장에 가해지고 있는 각종 규제 못지 않게 골프 대중화를 가로막고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라운딩을 할 수 있는 대중골프장이 얼마전 인천 영종도의 국제공항단지에 개장했다. 첫 도입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는 모양이다. 잠옷 같은 ‘몸빼’ 스타일이나 수영복 같은 반바지를 입고 라운딩을 하는 골퍼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나쁘지 않은 반바지 차림으로도 즐거운 라운딩을 할 수 있는 편안한 골프장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김경철 체육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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