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점심을 먹으러 서울중앙지검 정문을 나서는 검사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참여연대 등 110개 단체로 구성된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등 정ㆍ경ㆍ검ㆍ언 유착의혹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X파일 공대위)’회원들이 “검찰 내부의 ‘삼성 장학생’을 발본 색원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기부와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도청테이프에서 삼성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거명된 검찰 전ㆍ현직 간부 7명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8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7명 실명을 공개한 후, 김상희 법무부 차관이 사표를 내면서 파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대위는 22일 검찰 청사 앞 기자회견에 이어 23일에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만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 같은 외부 상황을 지켜보는 검찰은 ‘꿀먹은 벙어리’모양이다. ‘삼성 장학생’이라는 모멸적인 단어는 검찰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성과를 자신할 수 없는 수사에 선뜻 나서지는 못한다. 떡값 수수의혹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도청테이프의 주요 내용인 1997년 삼성의 불법대선자금 전달 의혹에 대한 수사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97년 삼성의 자금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측에 전달됐다는 것은 98년 세풍(稅風) 수사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기 때문에 수사단서가 있다. 이에비해 검찰 간부의 떡값 수수의혹은 당사자들이 진술을 거부하면 수사진척은 곤란해진다.
우선 도청테이프 속 화자인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주미대사(당시 중앙일보 사장)가 떡값 전달을 시인할 리 없다. 이름이 나온 검찰 전ㆍ현직 간부들은 더욱 펄쩍 뛰면서 너나 없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사 자체를 피할 수도 없다. 전 안기부 불법도청 조직 미림팀에 대한 수사가 끝나면 검찰은 조만간 삼성의 불법자금 전달 및 검찰 떡값 부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검찰은 “고발된 사안이기 때문에 고발사건 처리과정에 따라 수사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의 불법자금 수사에 성과가 없을 경우, 검찰이 ‘삼성 떡값’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연관 지어 생각할 것 아니냐”고 난감한 처지를 토로했다.
여기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3일 “도청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 및 통신의 자유를 정면 침해하는 것”이라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검찰로서는 운신의 폭은 좁은데 사방에서 주문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박선영 기자aurevoir@hk.co.kr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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