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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무기를 녹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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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무기를 녹일 때까지

입력
2005.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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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기억량은 크지 않다. 수많은 시를 쓰고도 잊혀지는 시인이 허다하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 한 편으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이어령씨에 따르면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옥스포드대 바우러 교수는 심훈을 ‘닥터 지바고’의 소련 작가ㆍ시인인 파스테르나크 등과 같은 반열에 놓고 있다. 그는 저서 ‘시와 정치’에서 '그날이 오면’을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심훈의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아

‘그날’은 광복의 날이다. 시의 격정적 메시지가 너무나 명료해서 특별한 도움말도 필요하지 않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머리가 깨질 듯한 감격으로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광복은 국토분단으로 바뀐 채 60년을 흘려보냈다. 온전한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고통이 싹트고 쌓여 왔다.

60돌 광복절은 예년에 없이 뜨거웠다. 이번 남북에서 잔치가 대대적으로 열려, 서울의 8ㆍ15 민족대축전에는 북측 정부ㆍ민간 대표단과 축구선수단 등 165명이 참가했다.

북 대표단은 국립묘지를 참배했고, 남북통일축구 경기장의 열기도 드높았다. 북한선박 두 척이 분단 후 처음 제주해협을 통과해 시간과 연료를 절약했고,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이뤄져 분단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경축행사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자세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진보ㆍ보수단체가 모두 시위를 벌였으나 대부분 평화적 수단에 호소했다. 폭력성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당국은 남북통일축구를 관람할 때 태극기ㆍ인공기의 사용과 ‘대~한민국’ 구호를 금지시켰다.

이를 수용한 관중이 경기장을 꽉 메운 채 북팀을 배려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밋밋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파도를 타는 ‘한반도기’는 남다른 감회를 주었다. 이제 남북관계가 좀 풀려 갈 모양이다.

보수세력은 이번 행사에서 이념적 무장해제와 ‘반미(反美) 조장’ 등 북의 대남 전술을 우려했고, 6.25 도발을 먼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남에서 식량ㆍ비료를 지원 받는 처지에 북이 이념적 접근을 한다는 것은 무리한 추측이다. 또한 과거사를 거론하면 반발하는 세력일수록, 북의 과거 6.25 책임에 집착하는 것도 이상하다.

처음 시도된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근력이 쇠한 분들에게는 편리한 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함께 백발이 된 남북의 모녀들, 얼굴 가득 주름이 진 형제자매 등이 제사 지내듯이 화상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은 이 땅 외에서는 볼 수 없는 눈물겨운 정경이었다.

화상상봉을 보며 같은 분단국가 중국ㆍ대만의 유명한 ‘탐친(探親)’을 떠올린다. 1980년대 대만이 중국 출신에게 허가해 시작된 대륙 친척방문이 탐친이다. 이미 매년 민간교류가 50만 명에 이르고, 올 음력설(春節)에는 48편의 전세기를 상호 취항 시키기도 했다. 편지왕래는 수십억 통을 헤아린다.

늦었지만 우리도 헤어진 부모친척을 만나러 남북으로 길을 떠나고, 자유롭게 편지도 주고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이 부담스러워 할지 모르나 우리는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이를 요구해야 한다.

●남북협력·군축으로 나가야

북핵 문제에서 6자회담도 중요하지만, 남북협력은 그보다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남북은 군축을 이뤄야 한다. 외국의 평균 국방비는 국민 총생산량의 2% 미만이라고 한다.

남한의 3.7%를 평균처럼 줄이면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무려 21.7%로 국민생활을 극도로 압박하고 있다. 양측이 군비를 축소하여 통일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포를 녹여 남북을 왕래하는 열차를 만들자.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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