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양김처럼 기이한 인연은 없다. 1970년대 초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이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이들은 협조와 경쟁의 묘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87년 분열 이후는 경쟁의 관계가 압도해 왔다. 아니 어떻게 하면 군사독재세력 등과 연대해 상대방을 죽일 것인가 하는 대립의 관계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경쟁의 관계는 두 사람이 모두 현실정치를 떠나고 상당 기간이 흐른 요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시절 누가 비리 아들들을 더 뒀나를 놓고 경쟁했던 양김은 8ㆍ15사면에 누구 아들은 포함되고 누구 아들은 빠질 것인가를 놓고 경쟁관계에 놓여졌다. 진짜 경쟁은 도청 게이트였다. 김영삼 정권의 도청테이프가 터져 나와 김영삼 정권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자 이에 뒤질세라 김대중 정부도 도청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아직까지도 양김이 도덕성 추락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 전 의원이 3당 통합 이전인 노태우 정권 초기에 자신이 노태우의 지시에 의해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40억 원을 전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고 나섰다.
●군사정권과의 뒷거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상도동측은 박 전 의원의 음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노태우 정권 시절 노태우로부터 20억원 플러스 알파를 받은 것으로 밝혀진 DJ에 이어 YS도 40억원 플러스 알파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양김이 뒤늦게 군사정권과의 뒷거래 전과 경쟁까지 벌리고 있는 것이다.
오랜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양김 중 YS가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온건노선을 추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YS가 DJ보다 강경한 선명 야당노선을 추구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것은 88년 총선 이후서부터 2000년 3당 통합까지의 시기이다. 88년 총선에서 DJ의 평민당은 득표율에서 YS의 통일민주당보다 뒤지고도 특유의 응집력 덕으로 의석에서는 앞서 제 1야당이 됐다. 그리고 여소야대하에서 노태우 정권과 DJ와의 밀월이 시작됐다.
소외된 YS는 노태우가 선거과정에서 약속한 중간평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등 강경 야당노선을 추구했다. 그러다가 결국 동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대후보를 매수하는 무리수로 더욱 위기에 물리게 되고 결국 고사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3당 통합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40억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야당을 끌고 가려면 양김이 정치자금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으로부터도 아니고 자신들이 비판하고 싸우는 군사정권의 대통령으로부터 양김이 모두 뒷돈을 받았다니 정말로 한심한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는 단순한 40억원 대 20억원이라는 금액의 산술적인 대비가 아니다. 금품수수에 관한 한, 단순한 산술적 금액을 넘어, 40억원을 받은 YS보다 20억원을 받은 DJ가 더 타락한 것이다.
광주학살에서 죽어간 광주 시민들의 피와 광주, 호남이 DJ에게 보내준 지지를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DJ는 광주학살의 주범중의 한명인 노태우로부터 피 묻은 단돈 1원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부도덕성 경쟁보며 답답
그러나 이 문제와는 별개로 YS의 또 다른 측면의 가증스러운 부도덕성은 엄하게 비판 받아야 한다. 즉 95년 전두환, 노태우의 비리조사과정에서 DJ의 20억원 플러스 알파가 터져 나왔을 때 자신도 40억원 플러스 알파를 받은 주제에 시치미를 땐 채 DJ의 부도덕성을 몰아세운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위선적 행위이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보기에도 민망한 양김의 부도덕성 경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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